경주 정씨
慶州 鄭氏
4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5.1만
2015 인구
2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지백호智伯虎
삼한시대 진한 사로 6촌 가운데 자산진지촌(취산 진지촌)의 촌장으로, 기원전 57년 다른 다섯 촌장과 함께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해 신라 건국에 공을 세웠다. 32년(유리이사금 9년) 정(鄭)씨 성을 하사받았다고 전한다.
신라 6부의 하나인 진지부 촌장 지백호를 시조로 하는, 우리나라 정씨의 도시조 격에 해당하는 가문이다. 유리이사금이 6부의 이름을 고치면서 지백호의 후손에게 정씨 성을 내렸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한다. 다만 중간 계보가 실전되어 고려 때 인물인 정진후(鄭珍厚)를 득관중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며, 그가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진 데서 경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가문의 역사
중시조 정진후는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해 금자광록대부·정당문학·병부상서 등을 지내고 월성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정이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25명을 배출했고, 개국공신 1등에 오른 정희계, 이조판서를 지낸 정효상, 임진왜란 때 부산진첨사로 왜군을 맞아 싸우다 전사한 충장공 정발이 대표적이다. 인종의 후궁 혜빈 정씨 등 왕실과의 인척 관계도 있으며 2015년 인구는 350,587명이다.
독립유공자 4명 확인
정수기鄭守基
건국훈장 애국장1923년 만주로 망명해 김창숙과 함께 간도 토지 매입을 통한 무관학교 설립과 독립군 양성을 추진했고, 1925년부터 국내에 잠입해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고문 끝에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정남균
건국훈장 애족장1926년 광주농업학교 재학 중 왕재일·장재성 등과 항일 학생 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했고,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뒤 성진회 활동과 관련해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지백호
사로 6촌장의 한 사람으로 박혁거세를 추대해 신라 건국에 공을 세운 개국좌명공신이다.
정희계
조선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고 판한성부사를 지낸 무신이다.
정효상
세조·성종 대에 이조판서를 지낸 문신으로 시호는 제안(齊安)이다.
정발
임진왜란 개전일에 부산진첨사로서 부산진성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장수로,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정지운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지어 이황과 사단칠정 논쟁의 단초를 연 성리학자다.
정준호
영화와 방송에서 활동해 온 배우다.
참고 자료
같은 정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