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 장씨
結城 張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1명
수록 친일 기록
2.5만
2015 인구
22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장갑張甲
결성의 호장(戶長)을 지낸 인물로 전한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어 결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계보가 뚜렷하게 이어지는 고려 말의 장하(張夏)를 중시조로 받든다.
결성 장씨는 결성 호장을 지낸 장갑을 시조로 하며, 고려 말의 장하를 중시조로 받든다. 본관 결성(結城)은 본래 백제의 결기군(結己郡) 또는 결사현이었고, 757년 신라 경덕왕 때 결성군(潔城郡)으로 고쳐졌다. 오늘날의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일대가 그곳이다. 중시조 장하는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1363년(공민왕 12) 2등공신에 책록되었고 뒤에 문하평리에 올랐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6명을 배출하였고, 무과와 생원시·진사시 등에도 여러 명이 올랐다. 집성촌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과 충청남도 청양군·천안시·공주시, 경기도 가평군, 전라북도 완주군 등지에 형성되어 있다. 근현대에는 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장도빈, 동아일보 초기 기자 장덕준, 서양화가 장욱진 등이 이 가문에서 나왔다. 1985년 4,758가구 19,432명, 2000년 6,708가구 21,068명으로 조사되었고, 2015년 인구는 24,921명이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장도빈張道斌
건국훈장 독립장1888년에 태어나 1963년에 죽은 국사학자이자 언론인이다.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들어가 21세에 논설위원이 되어 항일 논설을 썼고, 신민회에 관여하며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하였다. 광복 후 민중일보를 창간하였으며 한국대학과 단국대학 설립에도 참여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3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장덕수張德秀
언론·정치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1894년에 태어나 1947년에 죽은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다. 1920년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해 초대 주필을 지냈고 광복 후에는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친일단체에 참여하여 내선일체를 찬양하는 글을 기고하고 시국강연에 나선 행적이 문제가 되어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9년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장하
결성 장씨의 중시조로, 홍건적의 침입 때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1363년 2등공신에 책록되었고 문하평리를 지낸 문신이다.
장덕준
1891년에 태어나 1920년에 죽은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다가 1920년 만주에서 취재하던 중 목숨을 잃었으며, 2017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장욱진
1918년 충청남도 연기군에서 태어나 1990년에 죽은 서양화가이다. 일상의 소재를 정감 있는 형태와 독특한 색감으로 담아내 한국 근현대 미술의 대표 화가로 꼽히며, 대표작으로 까치와 집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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