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정씨
咸平 鄭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6,338
2015 인구
398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정언겸鄭彦謙
고려 때 병부상서와 문하시중을 역임한 문신이다. 족보에서는 그를 신라 6부촌장의 한 사람인 지백호(知伯虎)의 38세손이라 전한다. 1126년(인종 4)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자 모평(牟平)으로 물러나 살았고, 그 후손들이 본관을 함평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함평 정씨는 고려 때 병부상서·문하시중을 지낸 정언겸을 시조로 한다. 정언겸이 이자겸의 난을 피해 모평에 퇴거한 뒤 후손들이 그곳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함평으로 삼았다. 본관 함평(咸平)은 오늘날 전라남도 함평군 일대의 지명으로, 함풍현(咸豊縣)과 모평현(牟平縣) 두 현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합친 것이다. 백제의 굴내현(屈乃縣)이 757년 신라 경덕왕 때 함풍현으로 개칭되었고, 다지현(多只縣)은 다기현(多岐縣)을 거쳐 고려 태조 때 모평현이 되었다. 1409년(태종 9) 두 현을 병합하면서 함평현으로 개편되었으며, 기성(箕城)이라는 별호가 있었다.
가문의 역사
시조 정언겸이 모평에 자리 잡은 이래 후손들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세계를 이어왔다. 본관지 함평현은 1018년(현종 9) 영광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가 파견되었고, 1409년 모평현과 합쳐져 함평현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함평군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 함평군으로 편제되었다. 2000년에는 1,767가구 5,782명이었으며, 2015년 인구는 6,338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정언겸
고려 때 병부상서와 문하시중을 지낸 문신으로 함평 정씨의 시조이다. 1126년 이자겸의 난 때 모평으로 퇴거하였고, 그 후손들이 함평을 본관으로 삼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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