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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212.7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울산 박씨

蔚山 朴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2.7만

2015 인구

221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박윤웅朴允雄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31세손이라 전하며,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개국공신에 오르고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워 흥려백(興麗伯)에 봉해지고 숭록대부대장군에 배명되었으며 통합삼한익찬공신에 녹훈되었다. 시호는 장무(莊武)이다. 『고려사』 「지리지」에는 그의 공으로 고향인 하곡현이 동진현·우풍현과 병합되어 흥례부로 승격되었다고 전한다.

시조 박윤웅이 고려 태조 때 큰 공을 세워 흥려백에 봉해지면서 고향인 하곡현이 동진현·우풍현과 병합되어 흥례부로 승격되었다고 전한다. 흥려(興麗)는 고려를 일어나게 하였다는 뜻으로 울산의 옛 이름이며, 후손들이 이를 본관으로 삼아 예전에는 흥려 박씨라 하다가 지금은 울산 박씨라 부른다. 당시 흥려부는 동진현·하곡현·동안현·우풍현을 합친 지역으로 지금의 울산광역시 일대에 해당한다. 울산 박씨는 학성 이씨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울산의 대표적 토성 가문으로 꼽힌다. 고려의 수도 개성의 송경파를 비롯하여 용당종파, 대흥종파 등 28개 파가 있다.

가문의 역사

조선이 개국되던 때 박유(朴愈)는 개성에서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으로 이주해 은거하여 두문동 72현으로 칭송받았고, 그 며느리 현풍 곽씨는 남편이 죽은 뒤에도 시아버지를 정성껏 봉양하여 1431년 세종 13년 효부로 인정되고 광시면 은사리에 정려비가 세워졌다. 울산 지역 입향은 임진왜란 직후로, 흥려백의 후손인 임진왜란 의사 박홍춘(朴弘春)이 울산 중구 태화동 말응정마을에 정착한 뒤 그 일대가 울산 박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조선 중기의 박계숙과 박취문 부자는 무과에 급제하여 함경도로 부임하는 여정과 생활을 『부북일기(赴北日記)』로 남겼고, 박두세는 숙종 때 『요로원야화기』를 저술하였다. 울산 중구 태화동의 학산서원에는 시조 박윤웅과 후손 박추, 박유, 박홍춘을 배향하고 있으며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에는 문중 재실인 영모재가 있다. 세거지는 울산광역시 중구 태화동과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를 비롯하여 인천 강화군, 충남 예산군, 충북 옥천군, 경북 경산 등지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26,57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여말선초

박유

조선이 개국되자 개성에서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으로 이주해 은거하여 두문동 72현으로 칭송받았으며, 울산 학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조선

박홍춘

1537년에 태어나 1601년에 죽은 임진왜란 때의 의사로, 울산 중구 태화동 말응정마을에 정착하여 울산 박씨의 울산 입향조가 되었다. 호는 학수당이며 학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조선

박취문

아버지 박계숙과 함께 무과에 급제하여 울산에서 함경도로 무관 생활을 하러 간 여정을 각각 일기로 남겼는데, 그 일기책이 『부북일기』로 당시 생활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조선

박두세

숙종 때 충청도 양반이 서울 양반과 밤새 나눈 대화를 수필 형식으로 엮은 『요로원야화기』를 저술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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