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 박씨
珍原 朴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4만
2015 인구
19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박진문朴進文
고려 때 대장군을 지낸 인물로 진원 박씨의 시조이다. 박씨의 원시조인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후예에서 갈라져 나온 계통으로 전한다. 후손들이 진원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시조 박진문은 고려에서 대장군을 지냈으며, 박씨의 원시조인 박혁거세의 후예에서 분관한 계통으로 전한다. 본관 진원(珍原)은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일대의 옛 고을 이름이다. 시조의 8세손 박희중이 조선 세종 때인 1423년 진원군(珍原君)에 봉해지면서 본관이 굳어졌다. 후손들은 전라남도 보성과 장성 일대를 중심으로 세거하였고, 1652년에는 박광전의 후손 박만칠이 보성에서 동생 박만석·박만동을 데리고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신대마을에 들어와 연화마을을 개척하였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명과 무과 급제자 3명, 사마시 합격자 27명을 배출하였다. 박희중은 태종 때 증광문과에 급제해 지제교와 기주관을 거쳐 회례사로 일본에 다녀왔고 청렴한 관리로 이름이 높아 진원군에 봉해졌다. 조선 중기의 박광전은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배우고 왕자사부를 지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보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700여 명을 모았고, 정유재란 때 다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이 되었다. 그 아들 박근효는 1550년에 태어나 1607년에 죽었는데 아버지를 따라 아우 박근제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라좌의병 참모관으로 개령과 성주를 되찾는 데 공을 세웠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연화마을과 신대마을, 조화마을 등에 형성되었으며 여수 율촌면 반월리에 입향조 박만칠을 기리는 영모재가 있다. 2015년 인구는 33,630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박희중
시조의 8세손으로 태종 때 증광문과에 급제해 지제교와 기주관을 지냈고 회례사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1423년 진원군에 봉해졌다.
박광전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배우고 왕자사부를 지냈다. 임진왜란 때 보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700여 명을 모았고 정유재란 때 다시 의병장으로 나섰으며 시호는 문강이다.
박근효
1550년에 태어나 1607년에 죽었다. 아버지 박광전을 따라 아우 박근제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라좌의병 참모관으로 개령과 성주를 되찾는 데 공을 세웠고 1593년 2차 진주성전투 때 군량 공급을 맡았다.
참고 자료
같은 박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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