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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1604.4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표기 변형 합산

고령 박씨

高靈 朴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4.4만

2015 인구

160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박언성朴彦成

신라 경명왕의 둘째 아들 고양대군(高陽大君)으로,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29세손이라고 전한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고령을 본관으로 하였다.

고령 박씨는 신라 경명왕의 둘째 아들 고양대군 박언성(朴彦成)을 시조로 한다. 박언성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29세손으로 전하며, 고령 박씨는 박혁거세를 원시조로 받든다. 본관인 고령(高靈)은 경상북도 고령군 일대의 지명이다. 후대에 박섬(朴暹)·박환(朴還)·박연(朴連)을 각각 중시조로 하는 세 계통으로 갈라졌다. 이 세 계통에서 다시 교수공파·영참판공파·직강공파·읍취헌공파 등 16개 파로 분파되었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56명과 상신 1명, 청백리 4명을 배출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문과에 급제한 뒤 갑자사화 때 화를 입고 사형당하였다가 뒤에 신원되어 도승지에 추증된 박은이 나왔고, 공조참판 박공량과 사헌부 지평·장령을 지낸 박경업이 뒤를 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이조판서와 대사헌을 지낸 박장원, 병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지낸 박문수, 좌의정에 오른 박영원이 이름을 남겼다. 근현대에는 제5~9대 대통령 박정희와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제21대 전반기 국회의장 박병석이 이 가문에서 나왔다. 문화재로는 고령 박씨 종중재실이 전한다. 2015년 인구는 43,79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박은

1479년에 나서 1504년에 죽은 문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갑자사화 때 사형당하였다. 뒤에 신원되어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조선

박장원

1612년에 나서 1671년에 죽은 문신으로 이조판서와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

박문수

1691년에 나서 1756년에 죽은 문신으로 병조판서와 호조판서, 우참찬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조선

박영원

1791년에 나서 1854년에 죽은 문신으로 좌의정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근현대

박정희

1917년에 나서 1979년에 죽은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제5~9대 대통령을 지냈다. 고령 박씨 직강공파 29세손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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