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박씨
尙州 朴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3만
2015 인구
19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박언창朴彦昌
신라 경명왕 박승영의 다섯째 아들로 사벌대군(沙伐大君)에 봉해지고 사벌주(지금의 상주)를 식읍으로 하사받았으며, 본국과의 교통이 단절되자 후사벌국을 세웠다고 전한다. 원시조는 박혁거세이며, 중시조는 박언창의 10세손으로 사자금어대를 지낸 박견(朴甄)이다.
시조 박언창이 사벌대군에 봉해지고 사벌주를 식읍으로 받은 데서 후손들이 상주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상주는 상산(商山)이라고도 하므로 상산 박씨(商山朴氏)라는 이칭으로도 불린다. 본관 상주는 경상북도 서쪽에 있는 지명으로 본래 삼한시대 진한의 영토였다가 185년 사벌국으로 독립하였고, 신라 첨해왕 때 정벌되어 상주(上州)가 되었으며 진흥왕이 상락군으로, 신문왕 때 사벌주로 고쳤다가 경덕왕 때 상주(尙州)가 되었다. 1012년 현종 3년 상주안무사로 고쳐 8목의 하나가 되었고 1895년 상주목이 상주군으로 개편되었으며 1910년 함창군 일원이 편입되었다. 상주 박씨에서 직계 분적된 본관으로는 박지영을 파조로 하는 평택 박씨와 박영을 파조로 하는 충주 박씨가 있다.
가문의 역사
시조의 12세손 박여(朴侶)가 고려 충렬왕 때 첨의찬성사로 상산부원군(商山府院君)에 봉해졌고, 13세손 박문로는 판사재시사를 거쳐 좌참찬에 추증되었다. 큰 줄기는 총랑공파와 찬성공파로 나뉘며, 총랑공파는 다시 상암공파, 판서공파, 정숙공파 등으로 갈라졌다. 조선에서는 박안신(朴安臣)이 사간과 참판, 대사헌, 관찰사를 지내며 왜구를 막을 병선 제조를 상소하여 국방 강화를 주장하였고, 그 아들 박이창(朴以昌)은 우부승지와 공조참판, 형조참판을 거쳐 평안감사에 올랐다. 박세희(朴世熹)는 1514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좌부승지에 올랐으나 1519년 기묘사화로 강계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으며, 박대붕(朴大鵬)은 임진왜란 때 고경명, 조헌 등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다가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여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집성촌은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강평리와 청주시 옥산면 국사리, 증평군 증평읍 율리,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쌍지리,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문주리 등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33,154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박여
시조 박언창의 12세손으로 고려 충렬왕 때 첨의찬성사에 올라 상산부원군(商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찬성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박안신
1369년에 태어나 1447년에 죽은 문신으로 사관, 사간, 참판, 대사헌,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병조참의로 있을 때 왜구를 막을 병선 제조의 중요성을 상소하며 소나무 벌채를 금하고 배 만들 재목을 기를 것을 건의하였다.
박이창
1394년에 태어난 박안신의 아들로 우부승지와 공조참판, 형조참판을 거쳐 평안감사에 올랐다. 한림원에 들어간 날 관례이던 면신례를 거부하여 자허면신(自許免新)이라 불렸으며,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다 국법이 정한 양을 넘긴 양미를 가지고 간 일이 발각되자 1451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세희
1491년에 태어나 1514년 중종 9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홍문관수찬, 정언, 이조좌랑, 장령, 홍문관응교를 역임하였다. 1519년 사간을 거쳐 좌부승지에 올랐을 때 기묘사화가 일어나 강계로 유배된 뒤 그곳에서 죽었고,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문강(文岡)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박대붕
1525년에 태어나 기축옥사 때 연명 상소를 올렸다가 투옥되어 고초를 겪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 조헌 등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1592년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뒤에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고 순천 이천서원에 배향되었다.
참고 자료
같은 박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