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박씨
江陵 朴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6만
2015 인구
28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박제상朴堤上
신라 제5대 임금 파사이사금의 5세손으로 대아찬을 지낸 인물이다. 강릉 박씨는 그를 시조로 받든다. 중시조는 파사이사금의 35세손으로 전하는 박순이다.
강릉 박씨는 신라의 박제상을 시조로 삼고, 고려 명종 때 인물인 박순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박순은 1150년에 태어나 1174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보문각시어와 이부시랑, 좌승선, 한림학사, 중추원사, 남경유수를 거쳐 병부상서와 공부상서에 이르렀다. 석린의 모반을 평정한 공으로 보정정국공신에 책록되었으며 만년에 강릉으로 내려가 여생을 마쳤다. 디지털강릉문화대전은 박순이 강릉 김씨 시조 김주원을 따라 강릉에 왔던 박린의 후손이며, 그 인연으로 1200년 무렵 강릉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강릉 박씨에서 갈라져 나온 관향으로는 개성 박씨 등이 있다.
가문의 역사
박순의 후손들은 대대로 강릉에 세거하며 지역의 대표적인 사족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 전기에 박수량은 현량으로 천거되어 용궁현감과 사섬시주부를 지냈으나 1519년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강릉으로 돌아왔고, 어머니 상을 당해 삼년상을 치른 효행으로 효자 정문이 세워졌다. 그의 당숙인 박공달 역시 1519년 현량과에 천거되어 홍문관저작과 병조좌랑을 지냈으나 같은 사화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으며, 두 사람은 사천 바닷가의 쌍한정을 오가며 시와 학문으로 여생을 보냈다. 세거지는 강릉의 교동과 박월동, 사천면 미노리·판교리, 강동면 시동 일대이며 그 가운데 강동면 하시동리와 사천면 미노리·판교리에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16,159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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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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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박순
1174년 문과에 급제해 병부상서와 공부상서에 이른 문신으로 강릉 박씨의 중시조다.
박수량
1475년에 태어나 1546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으로 현량으로 천거되어 용궁현감을 지냈고, 기묘사화로 파직된 뒤 강릉에 은거하며 삼가집(三可集)을 남겼다.
박공달
1470년에 태어나 1552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으로 1519년 현량과에 올라 홍문관저작과 병조좌랑을 지냈고, 기묘사화 뒤 낙향해 박수량과 쌍한정에서 경학을 논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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