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박씨
泰安 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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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6,344
2015 인구
39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박원의朴元義
고려 말에 상서좌복야를 역임하고 광록대부에 오른 인물이다. 태안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신라 경명왕의 세자인 밀성대군 박언침의 13세손이자 삼사좌윤을 지낸 박을재(朴乙材)의 현손으로 전한다.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받들어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태안 박씨는 고려 말에 상서좌복야를 지내고 태안부원군에 봉해진 박원의를 시조로 한다. 시조는 신라 경명왕의 세자인 밀성대군 박언침의 13세손이며 삼사좌윤을 지낸 박을재의 현손으로 전하고, 광록대부에 올랐다. 후손들이 박원의를 1세조로 받들고 밀양 박씨에서 분적하여 태안을 관향으로 삼았다. 본관 태안(泰安)은 본래 백제의 성대혜현이었다가 신라 경덕왕 때 소태로 고쳤고, 고려 현종 때 연주에 예속되었다가 충렬왕 때 태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416년 조선 태종 때 군으로 승격되었고 1913년 서산군에 병합되었으며, 오늘날 충청남도 태안군에 해당한다.
가문의 역사
후손은 박자유를 파조로 하는 진주파, 박자주를 파조로 하는 청산파, 박일종을 파조로 하는 정읍파로 나뉜다. 조선시대에는 박늑과 박계원, 박유청, 박흥석 등 열 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박안도가 의병으로 일어나 진주성을 지키다가 순절하였고, 정묘호란 때에는 박민이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집성촌은 충청남도 태안군과 서산시를 비롯하여 경상남도 진주시, 충청북도 옥천군과 청주시 등 여러 곳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6,344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박원의
고려 말에 상서좌복야를 지내고 광록대부에 오른 인물이다. 태안부원군에 봉해졌으며 태안 박씨의 1세조이다.
박안도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일어나 활동한 인물이다. 진주성을 지키다가 순절하였다.
박민
정묘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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