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정씨
昌原 丁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2만
2015 인구
202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정덕성丁德盛
당나라 문종과 선종 때 대승상을 지내고 대양군(大陽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참소를 당해 신라 문성왕 때 이 땅으로 유배되어 왔다고 전한다. 그의 손자 정필진이 창원에 책봉되면서 창원 정씨가 이루어졌다.
창원 정씨는 당나라에서 대승상을 지내다 신라 문성왕 때 유배되어 왔다고 전하는 정덕성을 시조로 한다. 정덕성의 둘째 아들 정응도(丁應道)는 신라에 공을 세워 나주군에 책봉되어 금성군(錦城君)이라 하였고, 정응도의 아들 정필진(丁必珍)이 다시 공을 세워 창원에 책봉되어 의창군(義昌君)이라 한 데서 후손들이 창원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본관 창원은 고대에 금관가야에 속하였고 신라 경덕왕 때 의안군으로 고쳐졌으며, 오늘날 경상남도 창원시이다. 성씨 한자가 丁이어서 같은 이름으로 읽히는 鄭씨 가문들과는 계통이 전혀 다르다.
가문의 역사
창원 정씨는 고려 때 상호군을 지낸 정연방(丁衍邦)을 중시조로 하는 선창원파(先昌原派)와 공민왕 때 정난일등공신에 책록되고 창원군에 봉해진 정관(丁寬)을 중시조로 하는 후창원파(後昌原派)로 크게 나뉜다. 선대 인물로는 도제조를 지낸 정병쇄, 문하시중 태사령을 지내고 신라 경명왕의 둘째 딸과 혼인하였다고 전하는 정언주와 그 아들 정광순 등이 족보에 오른다. 본관지인 창원에는 오늘날 세거지나 집성촌이 남아 있지 않으며, 선대 묘역이 창원시 팔룡동 등명산에 있다. 2015년 인구는 31,687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정언주
문하시중 태사령을 지냈으며 신라 경명왕의 둘째 딸과 혼인하였다고 전한다.
정연방
고려 때 상호군(上護軍)을 지냈으며 선창원파(先昌原派)의 중시조로 받들어진다.
정관
고려 공민왕 때 정난일등공신(靖難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창원군에 봉해졌으며 후창원파(後昌原派)의 중시조로 받들어진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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