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 정씨
溫陽 鄭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만
2015 인구
20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정보천鄭普天
900년에 태어났다고 전하는 인물로 고려 초에 호부상서를 역임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책록되었다. 족보에서는 신라 6촌장의 하나인 지백호의 34세손으로 적고 있으며 아버지는 정사맹, 어머니는 면천 복씨라 한다.
온양 정씨는 고려 초에 호부상서를 지내고 금자광록대부에 책록된 정보천을 시조로 한다. 족보에서는 그를 신라 6촌장의 하나인 지백호의 34세손으로 적고 있다. 본관 온양(溫陽)은 오늘날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동 일대의 옛 고을 이름이다. 후손들이 이 고을을 관향으로 삼아 대를 이어 왔으며, 성씨 한자가 鄭이어서 丁씨 계통의 정씨 가문들과는 계통이 다르다.
가문의 역사
온양 정씨는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43명과 우의정 2명, 공신 1명을 배출하였다. 1450년 정충기가 문과에 급제한 이래 벼슬길이 이어졌고, 정순붕이 1504년 문과에 급제하여 우의정에 올랐으며 정만석도 1783년 문과에 급제해 1829년 우의정에 올랐다. 1630년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정뇌경은 병자호란 뒤 순국하여 충정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1773년 증광문과에 급제한 정민시는 여러 판서를 지내고 시호를 충헌이라 하였다. 집성촌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천안시 광덕면, 태안군 소원면과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등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29,761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정순붕
1484년에 태어나 1548년에 죽은 문신이다. 연산군 10년인 1504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다.
정뇌경
1608년에 태어나 1639년에 죽은 문신이다. 1630년(인조 8)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병자호란 뒤 순국하였으며 시호는 충정이다.
정민시
1745년에 태어나 1800년에 죽은 문신이다. 177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판서를 역임하였고 뒤에 우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헌이다.
정만석
1758년에 태어나 1834년에 죽은 문신이다. 1783년 문과에 급제하여 1829년 우의정에 올랐으며 시호는 숙헌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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