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 박씨
寧海 朴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2만
2015 인구
203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박제상朴堤上
신라 눌지왕 때 삽량주간(歃良州干)을 지낸 충신이다. 418년 고구려에 건너가 장수왕을 설득하여 왕의 아우 복호를 무사히 데려왔고, 이어 왜에 들어가 또 다른 아우 미사흔을 탈출시켰으나 자신은 붙잡혔다. 왜왕이 신하로 삼으려 하자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의 신하가 될 수 없다고 거절하여 불에 태워지는 참형으로 죽었다. 눌지왕은 그를 대아찬에 추증하고 그 부인을 국대부인에 책봉하였다.
영해 박씨는 신라 눌지왕의 두 아우를 고구려와 왜에서 구해 낸 충신 박제상을 시조로 한다. 본관 영해(寧海)는 경상북도 동북부의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우시군(于尸郡)을 통일신라가 유린군(有隣郡)으로 고쳤고 고려 초에 예주(禮州)로 삼았다. 1310년 영해부로 개칭되었으며 1913년 영덕군에 통합되어 오늘날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일대에 해당한다. 후손들이 이 고을 이름을 관향으로 삼아 대를 이어 왔다.
가문의 역사
고려 후기의 박원계는 1301년 문과에 급제하여 충숙왕 때 강릉도 존무사를 거쳐 전법판서를 지냈다. 박경은 조선이 개국된 뒤 대사헌과 완산부윤을 역임하였고, 박자청은 내시로 출사해 낭장에 오른 뒤 1419년 우군도총제부판사에 이르렀다. 과거 급제자는 고려 문과 1명과 조선 무과 12명을 냈으며, 생원시·진사시 외에 역과·율과·음양과·의과 등 잡과에서도 여럿을 배출한 점이 눈에 띈다. 근현대에는 국회의원 박구일과 박승국 등이 나왔다. 2015년 인구는 31,552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박원계
1282년에 태어나 1348년에 죽은 문신이다. 1301년 문과에 급제하여 충숙왕 때 강릉도 존무사를 거쳐 전법판서를 지냈다.
박경
1350년에 태어나 1414년에 죽은 문신으로, 조선이 개국된 뒤 대사헌과 완산부윤을 역임하였다.
박자청
1357년에 태어나 1423년에 죽은 인물이다. 내시로 출사해 낭장에 오른 뒤 벼슬이 거듭 올라 1419년 우군도총제부판사에 이르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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