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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8811.1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표기 변형 합산

여양 진씨()

驪陽 陳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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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록 친일 기록

11.1만

2015 인구

88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진총후陳寵厚

고려 예종 때 호분위대장군(虎賁衛大將軍)을 지냈고, 1126년(인종 4)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신호위대장군에 올라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졌다.

시조 진총후(陳寵厚)는 고려 예종·인종 대의 무신으로, 이자겸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신호위대장군에 오르고 여양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여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 여양(驪陽)은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일대의 고려시대 지명으로, 백제 때 사시량현이었다가 신라 경덕왕 때 신량현으로, 940년 여양현으로 개칭되었다.

가문의 역사

시조의 아들 진준(陳俊)은 고려 명종 조에 참지정사와 판병부사에 올랐는데, 무신정변 당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는 일이 부당하다고 주장해 많은 이를 구한 것으로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손자 진식·진화·진온 삼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해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특히 진화(陳澕)는 이규보와 나란히 거론되는 고려 중기의 문인이다. 조선시대에는 진복창(대사헌),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무신 진무성(陳武晟), 남명 조식의 문인 진극원 등을 배출했다. 2015년 기준 인구는 111,098명으로 진씨 가운데 가장 큰 본관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진의종陳懿鍾

관료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1943년 일제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해 1945년 일본 홋카이도청 농무과장으로 근무한 이력으로 친일인명사전 관료 부문에 수록되었다. 광복 후 보건사회부 장관과 제17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출처 확인 ↗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진총후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무신으로 여양군에 봉해진 시조이다.

고려

진준

참지정사·판병부사를 지낸 무신으로 무신정변 때 무분별한 살육을 막아 많은 사람을 구했다.

고려

진화

1200년 문과에 급제해 우사간·지제고를 지낸 문인으로 이규보와 함께 고려 중기를 대표하는 문장가로 꼽힌다.

조선

진무성

임진왜란 때 이순신 휘하에서 공을 세운 무신으로 구성부사를 지냈다.

근현대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을 거쳐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공학자이자 기업인이다.

근현대

진선미

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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