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진씨(晋)
南原 晋氏
한글 표기가 같은 다른 가문이 있어요: 남원 진씨(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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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친일 기록
7,128
2015 인구
389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진함조晉含祚
1023년(고려 현종 14)에 상서좌복야를 지내고 내사시랑평장사에 이른 문신이다. 남원 진씨는 그를 시조로 삼는다.
남원 진씨는 고려 현종 때 상서좌복야를 거쳐 내사시랑평장사에 오른 진함조를 시조로 한다. 1699년에 편찬된 용성지와 남원진씨족보에는 9세기 말엽 교룡산의 정기가 남원 대산면의 옥정이라는 샘에 서려 옥동자와 옥녀가 만나 부부가 되었고 이들이 남원 진씨의 비조가 되었다는 설화가 실려 있다. 고려 고종 때 진석이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공으로 남원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남원을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 남원(南原)은 오늘날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에 해당한다. 고려 충렬왕 때 예부상서를 지낸 진효경(晋孝經)을 1세 중시조로 한다.
가문의 역사
958년(광종 9) 고려에서 처음 시행된 과거에서 진긍이 진사 갑과로 급제하여 광문원소감을 지냈다. 고려 의종과 명종 때의 진광인(1128~1186)은 병부시랑에 이르렀고 추밀원부사 채정의 사위가 되었다. 고려 말 8세손 대에서 판서공파와 첨정공파, 감무공파, 학사공파의 네 파로 나뉘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좌승지 진벽, 병자호란 때 수원 광교 전투에 참전한 무과 출신 진종립, 1860년(철종 11) 정시 을과로 문과에 급제한 진창복 등이 배출되었다. 1800년 진순응이 남원시 대강면 방동리에 세운 방동서당이 남아 있다. 2015년 인구는 7,12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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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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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진긍
958년(광종 9) 고려에서 처음 시행된 과거에서 진사 갑과로 급제한 인물이다. 뒤에 광문원소감을 지냈다.
진광인
1128년에 태어나 1186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으로 의종과 명종 때 활동하였다. 병부시랑에 이르렀고 추밀원부사 채정의 사위가 되었다.
진벽
선조 때 좌승지를 지낸 인물이다. 임진왜란 중 금산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진종립
인조 때 무과에 급제한 무신이다. 병자호란 때 수원 광교 전투에 참전하였다.
진직현
1901년에 태어난 정치인으로 경성제국대학을 나왔다.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을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진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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