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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3161.3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풍기 진씨

豊基 秦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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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3만

2015 인구

316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진필명秦弼明

당나라 고종 때 병부시랑(兵部侍郞)에 올랐다고 전한다. 660년 대사마대장군으로 소정방 등과 함께 나당 연합군의 장수로 참전하여 백제를 멸한 뒤 신라에 귀화하였고, 태원백(太原伯)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풍기 진씨는 신라에 귀화하여 태원백에 봉해졌다고 전하는 진필명을 시조로 한다. 본관 풍기(豊基)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일대로, 신라 때 기목진(基木鎭)이었다가 940년(고려 태조 23) 기주(基州)로 고쳐졌다. 1450년(세종 32)에 은풍과 기천을 합하여 풍기군으로 승격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 풍기군이 되었다가 1914년 영주군에 통합되었다. 풍기 진씨에서 대원 진씨, 영춘 진씨, 남원 진씨가 갈라져 나갔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5명, 무과 급제자 6명, 사마시 7명을 배출하였고, 잡과에서는 역과 18명, 의과 16명 등 기술관을 다수 배출한 점이 두드러진다. 후대에는 선계랑공파, 순천공파, 산음공파, 감사공파, 감정공파, 제학공파, 전서공파, 참찬공파의 여덟 파계로 나뉘었다. 집성촌은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노좌리와 예천군 하리면 송월리,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제주특별자치도 애월읍 납읍리 등지에 있다. 1985년 9,856명, 2000년 11,046명으로 조사되었고, 2015년 인구는 12,974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진질명

고려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정중부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로 전한다.

근현대

진종오

1979년에 태어난 사격 선수 출신 정치인이다. 2002년부터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권총 종목에서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고, 올림픽 사격 역사상 최초로 3회 연속 우승을 이루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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