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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4165,149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경주 진씨

慶州 陳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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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5,149

2015 인구

416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진익룡陳翼龍

경주부사(慶州府使)를 지낸 인물로 전한다. 후손들이 그가 재임한 경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생몰년과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경주 진씨는 경주부사를 지낸 진익룡을 시조로 한다. 본관 경주(慶州)는 신라의 옛 도읍으로, 오늘날 경상북도 경주시 일대이다. 경주 진씨는 1992년(임신)에 간행된 여양 진씨 대동보에 합보하여 어사공파(상계)와 신광군파(중계)로 등재되었으며, 이로써 진씨의 대종인 여양 진씨 계통과 계보가 이어져 있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무과 급제자 5명과 생원시 2명을 배출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경학을 연구하고 눌용재문집을 남긴 문인 진성일이 나왔다. 1985년에는 371가구 1,522명, 2000년에는 3,656명으로 조사되었으며, 2015년 인구는 5,149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진성일

1664년에 태어나 1743년에 세상을 떠난 문인으로, 경학을 연구하고 문집 눌용재문집을 남겼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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