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박씨
務安 朴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1명
수록 친일 기록
9.8만
2015 인구
9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박진승朴進昇
신라 경명왕의 여섯째 아들 완산대군 박언화의 5세손으로, 고려에서 문과에 급제해 국자제주를 지내고 무안을 식읍으로 받았다.
시조는 고려에서 문과에 급제해 국자제주를 지낸 박진승(朴進昇)으로, 신라 경명왕의 아들 완산대군 박언화의 5세손이라 전한다. 그가 무안을 식읍으로 받으면서 후손들이 무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무안은 본래 백제의 물아혜군(勿阿兮郡)이었다가 신라 경덕왕 때 무안군(務安郡)으로 개칭된 전라남도 서부의 고을이다.
가문의 역사
2세 박섬은 거란 침입 때 고려 현종을 호종한 공으로 상서좌복야에 올라 공신각에 도형되었고, 박승중은 예종실록 편수관을 맡은 고려 전기의 문신이다. 조선에서는 15세 박호가 가문 최초로 문과에 급제했고, 임진왜란 때 경주부윤 박의장이 50여 차례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개성파·한산파·장단파·함양파·해남파 등 20여 개 분파로 나뉘며, 근대에는 한글 점자를 창안한 박두성을 배출했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박경종
건국훈장 애족장경북 영덕 출신으로 1911년 이상룡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 유하현 삼원보에서 이주 동포의 정착을 돕고 경학사 조직에 참여했으며, 1914년 국내에 들어와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징역 7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박종태
대통령표창1919년 3월 18일 경북 영덕 영해 장날에 2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경찰주재소로 몰려가 기물을 부수고 면사무소·우편소 집기를 파손하는 격렬한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9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박원종
대통령표창1919년 3월 18일 영해 장날 만세운동에 마을 주민들을 동원해 참여하고 2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경찰서·면사무소 등을 습격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2005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박암朴巖
관료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일제강점기 만주국에서 관리로 활동하며 일본군 수사 사무관과 교민회 위원장을 지냈고 1943년 친일 성격의 신문에 기고했다.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박섬
거란 침입 때 현종을 호종한 공으로 상서좌복야에 오른 문신이다.
박승중
예종실록 편수관을 지내고 《해동비록》 편찬에 참여한 문신이다.
박의장
임진왜란 때 경주부윤으로 50여 차례 전투를 치르며 공을 세운 무장이다.
박두성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창안해 '맹인들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교육자이다.
박석무
다산 정약용 연구의 권위자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학자이다.
박주민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이다.
참고 자료
- https://ko.wikipedia.org/wiki/무안_박씨
-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Report&mngNo=2010
-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Report&mngNo=34676
-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Report&mngNo=5648
- https://ko.wikipedia.org/wiki/박암_(19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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