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최씨
和順 崔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9만
2015 인구
174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최세기崔世基
고려 중엽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올랐다고 전한다. 평장사를 거쳐 남도 안렴사가 되었고, 몽골군의 침입 때 세운 공으로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화순의 옛 이름을 딴 오산군(烏山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화순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시조는 고려 중엽의 문신 최세기(崔世基)이다. 효행으로 천거되어 관직에 나아가 평장사를 거쳐 남도 안렴사를 지냈고, 몽골군의 침입 때 세운 공으로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에 올랐다고 전한다. 화순의 옛 이름인 오산(烏山)을 딴 오산군에 봉해지고 후손들이 화순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화순으로 확정하였다. 화순은 백제의 잉리아현이었다가 통일신라 때 여미현으로, 고려에 들어와 화순으로 이름이 바뀐 고을이며, 지금의 전라남도 중앙부에 있는 화순군이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1명을 배출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문하시중을 지낸 최부와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최윤의가 나왔고, 조선에서는 봉상대부 최계신과 숭록대부 최수 등이 관직에 올랐다. 화순읍 갱정 마을에 일찍 자리 잡아 번성하면서 삼정승 팔판서가 나왔다 하여 만연산 아래 마을을 팔판동(八判洞)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최영경은 뒤에 대사헌에 추증되었다. 집성촌은 화순읍 순곡 마을과 중지 마을을 비롯해 전라남도 나주·구례, 충청북도 보은, 경상북도 김천, 충청남도 공주 등에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38,604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최부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냈다.
최윤의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다.
최영경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뒤에 대사헌에 추증되었다.
최계신
봉상대부의 품계에 올랐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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