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씨(崔)
慶州 崔氏
한글 표기가 같은 다른 가문이 있어요: 경주 최씨(催)
9명
확인 독립유공자
3명
수록 친일 기록
103만
2015 인구
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최치원崔致遠
사로 6촌 가운데 돌산 고허촌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를 비조로 삼고, 그 24세손인 신라 6두품 출신 학자 최치원을 중시조로 한다. 868년 12세에 당나라로 유학해 874년 빈공과에 급제했고, 귀국 후 한림학사와 아찬에 올라 6두품으로서 최고 관등에 이르렀다.
경주 최씨는 신라 건국의 기초가 된 사로 6촌 중 돌산 고허촌 촌장 소벌도리를 비조로 하고, 신라 말의 대학자 최치원을 중시조로 삼는다. 본관인 경주(慶州)는 신라의 수도로 월성 최씨라고도 한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토황소격문〉으로 문명을 떨쳤고 귀국 후 시무십조를 올렸으나 뜻을 펴지 못하고 은거하였다.
가문의 역사
고려 초에는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올려 성종 대 유교적 통치체제의 기틀을 세웠고, 최언위·최승우 등이 문한을 담당하며 신라 6두품 출신 지식인 가문의 전통을 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42명을 배출하는 데 그쳐 상신과 대제학을 내지 못했으나, 병자호란 때 순절한 최진립과 그 후손인 경주 최부잣집이 12대 만석꾼으로 이어지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되었다. 근세에는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와 2대 교주 최시형을 배출하였다. 최치원 후대에서 6대파를 주축으로 26파로 나뉘며, 2015년 기준 약 103만 명(월성 최씨 표기 합산)이다.
독립유공자 9명 확인
최익현崔益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본관은 경주이고 호는 면암(勉菴)으로, 흥선대원군을 탄핵하고 강화도조약과 단발령에 맞서 상소를 올린 위정척사파의 상징이다. 을사조약 후 1906년 70대 노구로 태인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대마도로 압송되어 1907년 순국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최수봉崔壽鳳
건국훈장 독립장본관은 경주이고 경남 밀양 출신으로 3·1운동에 참여한 뒤 만주로 망명해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0년 12월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체포되어 1921년 사형으로 순국했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최현배崔鉉培
건국훈장 독립장본관은 경주이고 호는 외솔로 《우리말본》과 《한글갈》을 저술한 한글학자이다. 조선어학회 창립을 이끌다 흥업구락부 사건과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최동희崔東曦
건국훈장 애국장본관은 경주로 천도교 2대 교주 최시형의 아들이다. 3·1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해 고려혁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고 1926년 지린성에서 고려혁명당을 조직해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 병사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
출처 확인 ↗최준崔浚
건국훈장 애족장본관은 경주이고 호는 문파(汶坡)로 '경주 최부잣집' 12대 마지막 최부자이다. 백산무역주식회사 사장으로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 단체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고 전 재산을 교육 사업에 내놓아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을 설립하였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9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최익현崔益鉉 | 1833–1907 | 경기도 포천 | 의병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최창식崔昌植 | 1892–1957 | 서울 | 임시정부 | 건국훈장 독립장(1983)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최수봉崔壽鳳 | 1894–1921 | 경상남도 밀양 | 의열투쟁 | 건국훈장 독립장(1963)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최현배崔鉉培 | 1894–1970 | 경상남도 울산 | 문화운동 | 건국훈장 독립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최용덕崔用德 | 1898–1969 | 서울 | 광복군 | 건국훈장 독립장(1962)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최동희崔東曦 | 1890–1927 | 서울 | 만주방면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최준崔浚 | 1884–1970 | 경상북도 경주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최범술崔凡述 | 1904–1979 | 경상남도 사천 | 3.1운동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최용신崔容信 | 1909–1935 | 함경남도 덕원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1995)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3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최석민崔錫敏
관료·조선귀족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이 경주인 조선 말기 관료로 한일병합 후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받았다.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출처 확인 ↗최윤崔潤
관료·중추원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경주 최부잣집 종손 최준의 친아우로 본적이 경상북도 경주읍이다. 1936년과 1943년 두 차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형이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과 대비되는 행적으로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출처 확인 ↗최정원崔正源
조선귀족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이 경주인 조선귀족으로 남작 최석민의 양자이며 양아버지의 남작 작위를 승계하였다. 1937년 조선귀족의 전쟁 협력 단체인 동요회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최치원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하고 〈토황소격문〉으로 문명을 떨친 신라 말의 대학자로 경주 최씨의 중시조이다.
최승로
성종에게 시무 28조를 올려 고려의 유교적 통치체제를 설계한 문신이다.
최진립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해 순절한 무장으로 경주 최부잣집의 파조가 되었다.
최제우
1860년 동학을 창시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폈다가 처형된 종교 사상가이다.
최시형
동학 제2대 교주로 《동경대전》을 간행하고 교단 조직을 정비해 동학농민운동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참고 자료
- https://ko.wikipedia.org/wiki/경주_최씨
- https://ko.wikipedia.org/wiki/최익현
- https://ko.wikipedia.org/wiki/최수봉
- https://ko.wikipedia.org/wiki/최현배
- https://ko.wikipedia.org/wiki/최창식_(독립운동가)
- https://ko.wikipedia.org/wiki/최동희
- https://ko.wikipedia.org/wiki/최준_(1884년)
- https://ko.wikipedia.org/wiki/최석민
- https://ko.wikipedia.org/wiki/최윤_(18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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