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최씨
永川 崔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1만
2015 인구
24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최한崔漢
고려에서 공을 세워 연산부원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고려 의종에서 명종 무렵 신호위대장군을 지냈다고 전하며, 전주 최씨의 시조 최균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시조가 봉해진 연산이 지금의 영천이어서 후손들이 본관을 영천으로 삼았다.
영천 최씨는 고려에서 공을 세워 연산부원군에 봉해진 최한을 시조로 한다. 최한은 고려 의종에서 명종 무렵 신호위대장군을 지냈다고 전하며, 전주 최씨의 시조 최균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봉해진 연산이 지금의 영천이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영천으로 삼았다. 최씨의 원조는 신라 육촌 가운데 돌산 고허촌의 촌장 소벌도리로 전하나 그 뒤의 세계는 상고할 수 없어, 신라 말에서 고려 중엽 사이의 인물을 시조로 삼아 계통을 이어 오고 있다. 본관 영천은 오늘날 경상북도 영천시이다.
가문의 역사
가문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화약 병기를 만든 최무선과 그 아들 최해산이다. 이 밖에 목사 최유중, 상호군 최용화, 예조판서 최중연, 사간 최원도, 호조정랑 최자유 등이 관직에 오른 것으로 전한다. 세거지는 영천의 망정동과 서산동, 청통면 애련리와 구정, 고경면 전사리 일원이며 대구·경산·경주·청도·고령·성주·밀양·울산·영동 등지에도 퍼져 있다. 서산동에는 최응사의 서운재와 최대성의 경사재가, 고경면 전사리에는 최응사의 유정(柳亭)이 남아 있다. 2015년 인구는 21,43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최무선
1325년 영천 금호읍 원기리 마단마을에서 태어나 1395년에 세상을 떠난 무신이다. 중국 상인 이원에게서 염초 제조법을 배워 화약을 만들었고, 1377년 화통도감이 설치되자 그 제조(提調)로 임명되어 대장군·이장군·삼장군 등의 총포와 화포·화통을 제작하였다. 1380년 왜구가 침입하자 부원수로서 전함을 이끌고 나가 처음으로 화통과 화포를 사용해 왜선을 격파하였다.
최해산
1380년에 태어나 1443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최무선의 아들이다. 아버지에게서 화약수련법의 비법을 전수받아 1409년 군기감승으로 재직하면서 화차를 만들어 임금 앞에서 발사 시험을 하였고, 1424년에는 군기판사로서 광연루에서 화포 발사 연습을 주관하였다. 스무 해 남짓 화포를 담당하며 군장비를 보강하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1433년에는 도원수 최윤덕과 함께 파저강 토벌 작전에 참전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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