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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1993.2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해평 윤씨

海平 尹氏

0

확인 독립유공자

1

수록 친일 기록

3.2만

2015 인구

199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윤군정尹君正

1220년 무렵에 태어나 1300년 무렵에 죽은 것으로 전한다. 고려 고종과 원종 두 임금을 섬겨 벼슬이 금자광록대부 수사공 상서좌복야 판공부사에 이르렀다. 1257년 원주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우복야를 지냈다.

시조 윤군정은 고려 고종과 원종 두 대에 걸쳐 재상급 관직에 오른 인물로, 그 후손들이 해평을 관향으로 삼았다. 본관 해평은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대이다. 윤군정의 손자 윤석(尹碩)이 충숙왕 때 대언으로서 원의 행성 설치를 중지시키는 데 힘쓰고 해평부원군에 봉해지면서 가문이 크게 일어났다. 4세대에 이르러 문영공파 4개 분파와 충간공파 16개 분파로 갈라져 모두 20개 분파를 이루었다. 이후 조선을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명문 가문의 하나로 이어졌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 윤지표는 1310년에 태어나 1382년에 죽었으며 중대광에 올라 충간공의 시호를 받았다. 조선 중기에는 윤두수가 1533년에 태어나 1601년에 죽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종해 어영대장을 맡고 1592년 5월 우의정에 오른 뒤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고, 그 아우 윤근수는 1537년에 태어나 1616년에 죽었으며 해원부원군에 봉해졌다. 이 밖에 윤은보·윤은필·윤변·윤승길·윤승훈·윤방·윤흔·윤휘·윤훤 등이 조선시대 관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왕실과의 인연도 깊어 정종·연산군·헌종의 후궁과 여러 공주의 부마를 배출하였고, 순종의 계비 순정효황후가 이 가문에서 나왔다. 근현대에는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윤보선을 비롯해 윤치영·윤홍섭·윤세영 등이 나온 반면 윤덕영·윤택영처럼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인물도 있었다. 집성촌은 충청북도 괴산과 충주, 충청남도 청양과 아산, 경상북도 상주 등에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32,09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윤덕영尹德榮

귀족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1873년에 태어나 1940년에 죽었다. 1894년 과거에 급제해 경기도와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고, 1910년 한일병합 때 조카인 순정효황후에게서 옥새를 빼앗고 고종을 압박하는 등 병합 추진에 앞장서 자작 작위를 받았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올랐고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출처 확인 ↗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윤석

윤군정의 손자로 충숙왕 때 대언을 지내며 원의 행성 설치를 중지시키는 데 힘썼고 해평부원군에 봉해졌다.

조선

윤두수

1533년에 태어나 1601년에 죽었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해 어영대장을 맡았고 1592년 우의정에 오른 뒤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조선

윤근수

1537년에 태어나 1616년에 죽었다. 윤두수의 아우로 해원부원군에 봉해졌다.

근현대

순정효황후

대한제국 순종의 계비이다.

근현대

윤보선

1897년에 태어나 1990년에 죽었다. 1948년부터 서울특별시장을 지냈고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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