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1664.2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남원 윤씨

南原 尹氏

1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4.2만

2015 인구

166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윤위尹威

파평 윤씨 시조 윤신달의 7세손이자 윤관 장군의 증손이라고 전한다. 1176년(고려 명종 6)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박사를 거쳐 기거랑·이부랑중·예빈소경 등을 지냈고, 1200년(신종 3) 국자사업으로 전라도에 갔을 때 남원에서 일어난 복기남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남원백(南原伯)에 봉해졌다.

남원 윤씨는 고려 중기의 문신 윤위(尹威)를 시조로 한다. 윤위는 파평 윤씨 시조 윤신달의 7세손이며 윤관 장군의 증손이라고 전한다. 1176년(명종 6)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박사와 기거랑·이부랑중·예빈소경 등을 지냈다. 1200년(신종 3) 국자사업으로 전라도에 내려갔을 때 남원에서 복기남이 일으킨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남원백에 봉해졌고, 후손들이 남원을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인 남원은 오늘날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이며, 시조 윤위의 손자 윤돈(尹敦)에게서 함안 윤씨가 갈라져 나왔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대사헌과 관찰사, 경주부윤을 지낸 윤효전과 선조 때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가서 태조의 계보 오류를 바로잡아 광국공신에 책록된 윤섬 등 문신을 배출하였다. 윤섬의 손자 윤집은 병자호란 때 척화론을 폈다가 청나라에 끌려가 오달제·홍익한과 함께 삼학사로 불리며 순절하였다. 윤휴는 남인의 거물로 대사헌과 이조판서를 지냈고, 후대에는 이조판서와 양관대제학을 지낸 윤행임, 예조·이조판서와 중추부지사를 지낸 윤정현, 대사성과 이조판서를 지낸 윤병정이 나왔다. 정조의 후궁 화빈 윤씨도 이 가문 출신이다. 집성촌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생면,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과 화순군 능주면 천덕리, 담양군 금성면 대곡리,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 봉산리와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운용리 등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42,423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윤치장尹致章1876–1972경기도 광주의병건국훈장 애국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윤섬

선조 때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가서 태조의 계보가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은 공으로 광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조선

윤집

윤섬의 손자로 병자호란 때 척화론을 폈다가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순절하였다. 오달제·홍익한과 함께 삼학사로 불린다.

조선

윤휴

남인의 거물로 대사헌과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조선

윤행임

이조판서와 양관대제학을 역임한 문신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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