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 윤씨
坡平 尹氏
8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77.6만
2015 인구
9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윤신달尹莘達
고려 태조를 도와 벽상삼한익찬2등공신이 되고 삼중대광태사에 이른 개국공신이다. 파주 파평산의 용연(龍淵)에 떠오른 옥함(玉函)에서 나왔다는 탄생 설화가 전하며, 943년 동경대도독으로 부임해 30년간 재임하다 81세에 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파평 윤씨는 고려 개국공신 윤신달을 시조로 하며, 본관인 파평(坡平)은 오늘날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이다. 파평산 기슭 용연에 옥함이 떠오르고 그 안에서 시조가 나왔다는 설화가 전해져 파평 윤씨는 지금도 잉어를 먹지 않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5세손 윤관이 1107년 여진 정벌의 원수로 17만 대군을 이끌고 동북 9성을 쌓으면서 가문의 위상이 확립되었다.
가문의 역사
고려 시대 윤관이 여진을 평정하고 문하시중에 오른 이래 대대로 재상을 배출하는 명문이 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347명, 정승 11명, 왕비 5명을 배출하였다. 세조 비 정희왕후, 성종 비 정현왕후,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와 제2계비 문정왕후가 모두 파평 윤씨로, 명종 대에는 대윤(윤임)과 소윤(윤원형)의 외척 갈등이 정국을 좌우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윤선거·윤증 부자가 소론의 학문적 지주가 되었다. 남원백파·함안백파·덕산군파·문정공파 등 16대파로 나뉘며 2015년 기준 약 77만 명이다.
독립유공자 8명 확인
윤봉길尹奉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본관은 파평이고 충남 예산 출신으로,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 일왕 생일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대장 등을 처단하였다. 그해 12월 일본에서 총살로 순국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윤동주尹東柱
건국훈장 독립장본관은 파평이며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남겼다.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1945년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윤경빈尹慶彬
건국훈장 애국장본관은 파평으로 일본 유학 중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해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 한국광복군으로 복무하며 김구 주석의 경호를 맡았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8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윤봉길尹奉吉 | 1908–1932 | 충청남도 예산 | 의열투쟁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윤현진尹顯振 | 1892–1921 | 경상남도 양산 | 임시정부 | 건국훈장 독립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윤동주尹東柱 | 1917–1945 | 함경북도 종성 | 학생운동 | 건국훈장 독립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윤자형尹滋亨 | 1868–1939 | 충청남도 예산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윤봉춘尹逢春 | 1902–1975 | 함경북도 회령 | 만주방면 | 건국훈장 애국장(1993)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윤경빈尹慶彬 | 1919–2018 | 평안남도 중화 | 광복군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윤건중尹建重 | 1898–1987 | 전라북도 기타 | 임시정부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윤응선尹膺善 | 1853–1925 | 충청북도 음성 | 의병 | 건국포장(2015)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윤관
1107년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해 동북 9성을 쌓았고 문하시중에 오른 명장으로 파평 윤씨의 중시조이다.
윤필상
성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신으로 건주여진 정벌에 공을 세웠다.
정희왕후
세조의 비로 예종과 성종 즉위 초에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행하였다.
문정왕후
중종의 제2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로 수렴청정하며 불교 중흥 정책을 폈다.
윤증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에 전념해 '백의정승'으로 불린 성리학자로 소론의 정신적 지주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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