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윤씨
海南 尹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6.6만
2015 인구
124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윤존부尹存富
고려 문종 대(1046~1083)의 인물로 해남 윤씨의 시조다. 생존 연대와 관직, 배위 등의 기록은 전하지 않고 이름만 남아 있다. 8세손 윤광전(尹光琠)이 고려 공민왕 때 사온서직장을 지내고 강진에 터를 잡아 중시조가 되었다.
시조 윤존부(尹存富)는 고려 문종 대의 인물로 이름만 전할 뿐 행적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8세손 윤광전(尹光琠)이 고려 공민왕 때 사온서직장을 지내며 지금의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일대에 터를 잡아 중시조가 되었고, 그의 묘소가 도암면 계라리에 있다. 선대의 묘소가 모두 강진과 해남 관내에 있어 이 가문의 발상지는 강진과 해남으로 여겨진다. 조선 전기에 윤효정(尹孝貞, 1476~1543)이 해남정씨(海南鄭氏) 집안의 사위가 되어 강진에서 해남읍 연동리로 옮겨 살면서 해남 입향조가 되었고, 그를 파조로 하는 어초은파(漁樵隱派)가 해남 지역 세거의 중심이 되었다. 본관 해남은 전라남도 해남군이며, 강진군에도 세거지가 널리 퍼져 있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0명과 무과 급제자 13명을 배출하였고 생원시·진사시 합격자도 다수 냈다. 윤효정의 세 아들이 잇달아 과거에 오르면서 가문이 호남의 명문 사족으로 자리 잡았는데, 큰아들 윤구(尹衢, 1495~?)는 1516년 문과에 급제해 홍문관 부교리를 지내고 기묘사화 때 영암에 유배된 기묘명현이며, 윤행(尹行)은 동래부사와 나주목사·광주목사를 거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올랐고, 막내 윤복(尹復)은 1538년 문과에 급제해 충청도관찰사를 지내고 강진 금곡서원에 배향되었다.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어부사시사》를 남긴 시가문학의 대가이자 효종과 현종의 세자 시절 사부였다. 윤선도의 증손 윤두서(尹斗緖, 1668~1715)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그 아들과 손자까지 3대에 걸쳐 문인화의 맥을 이었다. 윤효정이 터를 잡은 이래 어초은파 종가가 이어 온 해남읍 연동리의 녹우당(綠雨堂)은 전남 지방에 남은 주택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며 1968년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해남윤씨 족보 목판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집성촌은 해남군과 강진군 일대에 집중되어 있으며 화산면 율동은 지금도 마을 전체가 해남 윤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2015년 인구는 66,394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윤효정
해남 입향조이자 어초은파의 파조로, 해남정씨 집안의 사위가 되어 연동리에 터를 잡고 가문이 명문 사족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닦았다.
윤구
1516년 문과에 급제해 홍문관 부교리를 지냈으며 기묘사화 때 영암에 유배된 기묘명현이다.
윤선도
《어부사시사》를 남긴 시가문학의 대가로 효종과 현종의 세자 시절 사부를 지냈다.
윤두서
윤선도의 증손으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이며, 아들과 손자까지 3대에 걸쳐 문인화의 맥을 이었다.
윤관
제12대 대법원장을 지낸 법조인이다.
참고 자료
같은 윤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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