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전씨
天安 全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7.6만
2015 인구
5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전섭全聶
기원전 18년 온조가 백제를 건국할 때 공을 세운 십제공신(十濟功臣) 중 한 사람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전씨 전체의 도시조로 받들어진다.
천안 전씨는 백제 개국공신으로 환성군에 봉해졌다는 전섭(全聶)을 도시조로 삼는다. 실질적인 중시조는 고려 개국공신 전락(全樂)으로, 927년 대구 공산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군에 포위된 태조 왕건을 구하고 신숭겸과 함께 순절하였다. 그 공으로 삼사좌복야에 추증되고 천안부원군(天安府院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천안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천안은 충청남도 서북부의 지명으로 930년 고려 태조 때 천안부로 개칭된 곳이다.
가문의 역사
고려조에서 우부승지를 지낸 전승(全昇), 보문각제학을 지낸 전신(全信) 등이 배출되었고, 조선에서는 세종·문종·세조 대의 의관 전순의(全循義)가 《산가요록》·《식료찬요》를 남겼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휘하에서 싸운 전방삭과 왜적에 맞서다 순절한 전계종 등이 나왔고, 조선 후기에는 철산부사 전동흘이 장화홍련 설화로 알려졌다. 판결사공파, 대제학공파, 삼재공파, 문효공파, 나주군파 등 11개 분파로 나뉘며 호남 지방에 특히 많이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176,239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전해산全海山
건국훈장 대통령장본명은 전기홍(全基泓). 1908년 이석용의 창의동맹단 참모를 거쳐 대동창의단을 조직하고 대장이 되어 약 10개월간 호남 서남부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1909년 체포되어 이듬해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전락
고려 개국공신으로 927년 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구하고 전사해 천안부원군에 추봉된 중시조.
전신
고려 후기 보문각제학·계림부윤을 지낸 문신으로 검계서원에 배향되었다.
전순의
세종·문종·세조 대의 어의로 《식료찬요》·《산가요록》을 저술한 조선 전기 최고의 의관.
전봉준
'녹두장군'으로 불린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로 1894년 반봉건·반외세 농민군을 이끌었다.
전동흘
17세기 무신으로 철산부사 시절 장화홍련 사건을 해결한 일화로 널리 알려졌다.
전도연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대한민국의 배우.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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