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전씨
潭陽 田氏
4명
확인 독립유공자
1명
수록 친일 기록
15.5만
2015 인구
68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전득시田得時
고려 의종 때 학행으로 천거되어 명경과에 급제하고 좌복야와 참지정사를 지낸 인물로, 담양 전씨의 시조이다.
담양 전씨는 전라남도 담양군을 본관으로 한다. 고려 의종 때 재상급인 참지정사에 오른 전득시를 시조로 하며, 그가 담양 출신인 데서 후손들이 담양을 관향으로 삼았다. 담양은 예로부터 추성(秋城)이라고도 불린 고을이다.
가문의 역사
전득시의 6세손 전희경의 아들 대에서 야은공파(전록생)·뇌은공파(전귀생)·경은공파(전조생)의 세 파로 갈라졌으며, 연안·하음·고양·예산 전씨 등이 담양 전씨에서 분관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12명과 다수의 무과·생원진사시 합격자를 배출했고, 연산군의 후궁 숙용 전씨와 중종의 외조모인 연안부부인 전씨가 이 가문에서 나왔다.
독립유공자 4명 확인
전명운田明雲
건국훈장 대통령장미주 한인 사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1908년 3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제국 외교고문이던 친일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를 습격하였고, 뒤이어 장인환이 쏜 총탄에 스티븐스가 숨졌다.
출처 확인 ↗전창호田昌浩
건국포장부산에서 고등상업학교 재학 중이던 1944년 동지들과 비밀결사 순국단을 조직해 서기를 맡고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에 합류하려다 발각되어 광복 때까지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3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전봉덕田鳳德
경찰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고등관 경시로 임용되어 평안북도 경찰부 보안과장과 경기도 경찰부에서 근무하며 일제의 전시 체제에 협력하였다. 광복 후에는 육군 헌병사령관과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거쳐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전득시
고려 의종 때 참지정사에 오른 담양 전씨의 시조.
전록생
야은이라는 호로 알려진 고려 말의 문신으로 야은공파의 파조.
전우
간재라는 호로 알려진 조선 말의 성리학자로 많은 문인을 길러냈다.
전명운
스티븐스 저격 의거로 알려진 미주 지역 독립운동가.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감사원장을 지낸 관료.
참고 자료
같은 전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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