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 전씨
龍宮 全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만
2015 인구
20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전방숙全邦淑
전씨의 도시조로 전하는 백제 개국공신 전섭(全聶)의 28세손이다.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를 거쳐 평장사에 올랐으며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그의 후손들이 용궁을 본관으로 삼았다.
용궁 전씨는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를 거쳐 평장사에 오른 전방숙을 시조로 한다. 전씨의 도시조는 백제 개국 당시 온조왕을 도와 십제공신(十濟功臣)이 되고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는 전섭으로, 그 후손이 열여덟 본으로 갈라졌다. 전방숙은 전섭의 27세손인 전공렬(全公烈)의 둘째 아들로 전한다. 본관 용궁(龍宮)은 오늘날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일대의 옛 고을 이름이다.
가문의 역사
조선 시대에 후손들이 경상북도 일원으로 널리 퍼졌다. 영천 입향조는 봉상시직장을 지낸 전영창(全永昌)으로, 1426년에 태어나 1510년에 죽었으며 중앙 정치에 염증을 느껴 낙향하였다가 1472년(성종 3) 찬의에 제수되자 나아가지 않고 처가 동네에 은둔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손 가운데 현감을 지낸 전삼익, 병마절도사를 지낸 전삼달, 수군절도사를 지낸 전존성 등 무반 인물이 이어졌다. 2015년 인구는 30,154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전영창
1426년에 태어나 1510년에 죽었으며 봉상시직장을 지냈다. 낙향한 뒤 1472년(성종 3) 찬의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은둔하였으며 용궁 전씨의 영천 입향조가 되었다.
전삼달
무관으로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전존성
무관으로 수군절도사를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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