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전씨
沃川 全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4.8만
2015 인구
153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전유全侑
전씨의 도시조 전섭(全聶)의 27세손으로 전한다. 고려 충숙왕 때 봉익대부와 밀직부사, 판도판서, 상호군 등을 지냈고 관성군(管城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어 옥천을 관향으로 삼았다.
시조 전유가 관성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관성의 뒷날 이름인 옥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관성은 충청북도 옥천군의 옛 지명이다. 전씨는 도시조 전섭으로부터 18개 본관으로 갈라져 나왔는데, 옥천 전씨는 그 가운데 한 갈래다. 시조가 고려 후기에 재상급 관직에 오른 덕에 조선 초기부터 옥천 일대에 뿌리내린 사족으로 자리 잡았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7명과 무과 급제자 20명, 역과 1명을 배출했고 생원시와 진사시에서도 합격자를 냈다. 전희철은 단종 때 상장군에 올랐으나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으며, 임종 때 아들에게 영월의 단종 능을 참배하도록 당부했다고 전한다. 전팽령은 1524년 문과에 급제해 형조와 공조의 좌랑과 정랑을 거쳤고 1550년 상주목사로서 청렴한 치적을 남겨 청백리에 선발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전승업이 의병으로 병참을 지원하고 금산성 전투 뒤 의병장 조헌의 시신을 수습해 그 유고집 편찬에 참여했으며, 전식은 의병으로 나섰다가 1603년 문과에 급제해 이조참의와 대사간을 거쳐 1642년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병자호란 때는 전극항이 예조정랑으로 순절하였다. 2015년 인구는 47,681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전재덕全在德 | 1924–2016 | 경상북도 선산 | 광복군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전희철
단종 때 상장군에 올랐으나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으며, 임종 때 아들에게 영월의 단종 능을 참배하도록 당부했다고 전한다.
전팽령
1524년 문과에 급제해 형조·공조의 좌랑과 정랑, 성균관사성 등을 거쳤고 1550년 상주목사로서 청렴한 치적을 남겨 청백리에 선발된 문신이다.
전승업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병참을 지원했고 금산성 전투 뒤 의병장 조헌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 유고집 편찬에 참여한 인물이다.
전식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나섰다가 1603년 문과에 급제해 병조참지와 이조참의, 대사간을 거쳐 1642년 지중추부사에 이른 문신이다.
전극항
1624년 문과에 급제해 예조정랑에 올랐고 병자호란 때 순절한 문신이다.
참고 자료
같은 전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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