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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302.4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경산 전씨

慶山 全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2.4만

2015 인구

230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전영령全永齡

고려 신종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으로 공을 세워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진 무신이다. 전씨의 도시조 전섭의 27세손으로 전한다. 그의 아들 전공량은 시어사를, 손자 전윤재는 검교군기감을 지냈다.

경산 전씨는 고려 신종 때 옥산군에 봉해진 전영령을 시조로 하며, 정선 전씨에서 갈려 나온 것으로 전한다. 모든 전씨의 도시조는 백제 개국공신 전섭(全聶)이며 전영령은 그 27세손이라 한다. 옥산(玉山)은 경산의 옛 이름이어서 이 가문을 옥산 전씨(玉山全氏)라고도 부르며,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가 그곳이다. 시조가 받은 봉호에서 관향이 정해진 셈이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활동한 전백영이 이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백영은 간관으로서 1375년 우헌납 이첨과 함께 재상 이인임의 죄를 탄핵하였다가 지영주사로 좌천되었고, 조선 개국 후 병조전서와 대사헌을 거쳐 1405년 지의정부사에 올랐다. 1412년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고향 경산현으로 물러났으며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문중은 경산시 남천면 대명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실전되었던 시조 묘소 대신 단과 비를 세워 대명리로 옮겼다. 2015년 인구는 23,923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전백영

1412년에 죽은 문신으로 고려 말 간관으로 이인임을 탄핵하였다가 지영주사로 좌천되었다. 조선 개국 후 우사의대부·병조전서를 거쳐 1399년 대사헌, 1405년 지의정부사에 올랐고 경기도관찰사를 지냈다. 시호는 문평이다.

고려

전공량

시조 전영령의 아들로 시어사(侍御史)를 지낸 인물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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