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최씨
水原 崔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5만
2015 인구
299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최상저崔尙翥
고려 예종 때 수주(水州)의 호장(戶長)을 지낸 인물이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어 직장공파·상서공파·목사공파·경헌공파·헌납공파·참판공파의 여섯 파로 갈라졌다. 수원 최씨에는 이와 별도로 고려 때 산원동정(散員同正)을 지낸 최정(崔靖)을 시조로 하는 계통도 있어, 같은 성과 본관을 쓰면서 두 계통이 나란히 전해 온다.
수원 최씨는 같은 성과 본관을 쓰면서도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으로 전해 온다. 하나는 고려 예종 때 수주의 호장을 지낸 최상저를 시조로 하는 계통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때 산원동정을 지낸 최정을 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최상저 계통은 직장공파·상서공파·목사공파·경헌공파·헌납공파·참판공파의 여섯 파로 나뉘었고, 최정 계통은 서초파·명천파·서인파·정파로 갈라졌다. 본관 수원(水原)은 경기도 중남부의 지명으로 수성(隋城)이라고도 하였는데, 고구려 때 매홀군이었다가 통일신라 때 수성군이 되었고 고려 때 인주와 수주를 거쳐 1301년 수원부로 개칭되었다.
가문의 역사
고려 초의 최사위는 수주 출신으로 961년에 태어나 1041년에 죽었으며, 1009년 김치양의 난 때 대정문별감으로 궁문을 닫고 국왕을 호위하였다. 그는 형부상서·서경유수·태자태사·내사령을 거쳐 검교태사 수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에 올라 재상의 으뜸 자리에 이르렀고, 1052년 현종의 사당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정숙(貞肅)이다. 고려 의종 때의 최누백은 기거사인(起居舍人)을 지냈고, 최자성은 성품이 강직하고 민첩하여 여러 관직을 잘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고려에서 신호위보승별장을 지낸 최원은 조선이 서자 금부도사 임명을 거절하였으며, 조선의 최명원은 통훈대부로 장악원정을 지냈고 최덕량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완도·무안·영광·장성과 경기도 광주·화성, 함경도 성진·명천 등에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14,687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최사위
961년에 태어나 1041년에 죽은 고려 전기의 재상으로 본관은 수주이며 시호는 정숙(貞肅)이다. 1009년 김치양의 난 때 대정문별감으로 궁문을 닫고 국왕을 호위하였고, 형부상서·서경유수·태자태사·내사령을 거쳐 검교태사 수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에 올랐다. 1052년 현종의 사당에 배향되었다.
최누백
고려 의종 때 기거사인(起居舍人)을 지낸 문신이다.
최원
고려에서 신호위보승별장을 지냈으나 조선이 개국한 뒤 금부도사 임명을 거절하였다.
최덕량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참고 자료
같은 최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