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류씨
瑞山 柳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2만
2015 인구
200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류성간柳成澗
고려 때 서녕부원군(瑞寧府院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후손들이 그의 봉호를 따라 본관을 서령(瑞寧) 또는 서산(瑞山)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고 전한다. 이후 고려 말의 류숙과 류방택을 중시조로 받들어 계보를 잇는다.
서산 류씨는 서녕부원군에 봉해진 류성간을 시조로 한다. 시조가 받은 봉호에 따라 후손들이 본관을 서령 또는 서산으로 삼아 대를 이었다고 전하며, 그런 까닭에 서령·서녕·서영 같은 표기가 오랫동안 함께 쓰여 왔다. 본관 서산(瑞山)은 백제 때 기곡군이었다가 신라 경덕왕 때 부성군으로 고쳐졌고, 고려와 조선을 거쳐 1413년(태종 13) 서산군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서산군이 서산시에 통합되어 오늘날 충청남도 서산시가 되었다. 가문에서는 고려 말 안사공신에 책록된 류숙과 판사천감사를 지낸 류방택을 중시조로 받든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의 사암 류숙은 지추밀원사로서 기철 일당을 숙청한 공으로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책록되었다. 류방택은 판사천감사를 지냈으며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절의를 지켜 계룡산 삼은각에 정몽주·이색·길재와 함께 배향되었다. 조선 초의 류방선은 열두 살 무렵부터 변계량과 권근에게 배워 일찍이 수재로 이름났고, 유배지 영천에 태재(泰齋)라는 서재를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과거 급제자는 고려 문과 4명, 조선 문과 7명, 무과 14명을 냈고 생원시·진사시를 합해 약 40명이 올랐다. 집성촌은 충청남도 서산시 일원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31,933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류숙
호는 사암(思庵)이며 지추밀원사로서 기철 일당을 숙청한 공으로 안사공신에 책록된 문신이다. 서산 류씨의 중시조로 받들어진다.
류방택
판사천감사(判司天監事)를 지낸 인물이다.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절의를 지켜 계룡산 삼은각에 정몽주·이색·길재와 함께 배향되었다.
류방선
1388년에 태어나 1443년에 죽은 학자로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이다. 1409년 아버지 류기가 민무구·민무질 형제의 옥사에 연루되면서 함께 청주를 거쳐 영천으로 유배되었고, 그곳에 태재라는 서재를 짓고 학문에 힘썼다. 문집 태재집(泰齋集) 5권이 1450년 간행되었고 시 10수가 동문선에 실렸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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