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해 최씨
興海 崔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7만
2015 인구
281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최호崔湖
최치원의 18세손으로 전하는 고려의 무신이자 문신이다. 삼중대광 문하시중과 신호위 상장군을 지냈고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책훈되었으며 곡강부원군(曲江府院君)에 봉해졌다. 곡강은 흥해의 옛 이름이어서 후손들이 흥해를 본관으로 삼았으며, 뒤에 그를 기리는 곡강서원(曲江書院)이 세워졌다.
흥해 최씨는 최치원의 18세손으로 전해지는 최호를 시조로 한다. 최호가 삼한벽상공신에 오르고 곡강부원군에 봉해졌는데 곡강이 흥해의 옛 이름이었으므로, 후손들이 그 봉호를 따라 흥해를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 흥해는 신라 때 퇴화군(退火郡)이었다가 757년 의창군(義昌郡)으로 고쳐져 안강·기립·신광·임정·영일·기계의 여섯 현을 관할하였고, 940년 흥해군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 경주부의 임내로 편입되었다가 1367년 지군사로 승격되었으며, 1914년 흥해면이 되어 영일군에 병합되었다. 1956년 의창면으로 고쳐졌다가 1973년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3년 다시 흥해읍이 되었으며, 1995년 영일군과 포항시가 통합되어 오늘날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이다.
가문의 역사
후손들은 김해파·밀양파·거창파·자인파·경산파·나주파·대구파 등 열여섯 지파로 갈라져 영남 각지에 퍼졌다. 조선 세종 때 최연은 사성을 지내고 직제학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에는 최팔개가 의병을 모아 싸우다 전사하였고, 그 형제인 최팔원은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한 뒤 부산진에서 전사하였으며, 의병장 최응담도 서른 살에 목숨을 잃었다. 경상북도 청도군에는 최자순(崔自淳)이 입향하여 세거해 왔고, 그 밖에 이천·안성·밀양·김해·경산 등지에 후손이 흩어져 산다. 2015년 인구는 16,628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최호
최치원의 18세손으로 전하며 삼중대광 문하시중과 신호위 상장군을 지냈다. 삼한벽상공신에 책훈되고 곡강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그가 죽은 뒤 그를 기리는 곡강서원이 세워졌다.
최연
세종 때 사성을 지내고 직제학에 이른 문신이다.
최팔원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중 부산진에서 전사하였다. 형제인 최팔개도 의병을 모아 싸우다 전사하였다.
최응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서른 살에 죽었다.
참고 자료
같은 최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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