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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1946.3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해주 오씨

海州 吳氏

6

확인 독립유공자

1

수록 친일 기록

46.3만

2015 인구

19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오인유吳仁裕

중국 송나라의 대학사로 984년 고려에 건너와 검교군기감을 지내고 해주에 정착했다고 전하는 경파(京派)의 시조다. 향파(鄕派)는 1216년 거란 격퇴의 공으로 해주군에 봉해지고 참지정사에 오른 오현보(吳賢輔)를 시조로 한다.

본관 해주(海州)는 지금의 황해남도 해주시로, 시조 오인유가 고려에 동래해 해주에 터를 잡으면서 후손들이 이곳을 본관으로 삼았다. 해주 오씨는 오인유를 시조로 하는 경파와 오현보를 시조로 하는 향파의 두 계통으로 나뉜다. 오인유의 후손은 7세 무렵을 전후해 30여 개 파로 갈라졌다.

가문의 역사

고려에서 문하시랑동평장사 오연총, 도첨의찬성사 오형 등을 배출했고, 조선시대에는 정승 2명, 대제학 3명, 공신 3명과 문과 99명·무과 267명의 급제자를 냈다. 인조 때 영의정 오윤겸,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우의정 오명항, 병자호란 삼학사의 한 사람 오달제가 대표적이다. 개화기에는 역관이자 금석학자 오경석과 그 아들 오세창이 나와 근대 문화운동을 이끌었고, 2015년 인구는 462,704명이다.

독립유공자 6명 확인

오세창吳世昌

건국훈장 대통령장

개화파 역관 오경석의 아들로 《만세보》를 발행한 언론인이자 서예가이며,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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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吳東振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해 광복군총영 총영장과 정의부 총사령을 맡아 국내 진공작전을 지휘했다. 김좌진·김동삼과 함께 만주 3대 맹장으로 불렸으며 옥중에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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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선吳光鮮

건국훈장 독립장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서로군정서 중대장, 한국독립당 의용군 중대장으로 활동했으며 광복 직전 한국광복군 국내지대장을 맡았다. 아내 정현숙과 두 딸도 모두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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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옥吳姬玉

건국훈장 애족장

오광선의 차녀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서 선전 활동과 밀서 전달을 맡았고, 이후 한국광복군 제5지대에 편입되어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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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5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오동진吳東振1889–1944평안북도 의주만주방면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위키백과 ↗공훈록 ↗
오세창吳世昌1864–1953서울3.1운동건국훈장 대통령장(1962)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오광선吳光鮮1896–1967경기도 용인만주방면건국훈장 독립장(1962)위키백과 ↗공훈록 ↗
오윤선吳潤善1893–1960경기도 안성3.1운동건국훈장 애국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오근태吳根泰?–1944강원도 화천만주방면건국훈장 애국장(1995)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오긍선吳兢善

교육·의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한국인 최초의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을 지낸 피부과 의사로, 1930년대 초부터 조선교화단체연합회 활동과 사상보호관찰소 촉탁 등을 맡고 중일전쟁·태평양전쟁기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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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오연총

윤관과 함께 여진 정벌에 나서 9성을 개척한 문하시랑동평장사다.

조선

오윤겸

인조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통신사로 일본에 건너가 포로 쇄환에 힘썼다.

조선

오달제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다 심양에서 순절한 삼학사의 한 사람이다.

조선

오명항

영조 때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고 우의정에 오른 분무공신이다.

조선말

오경석

역관이자 금석학자로 청나라 서적을 들여와 개화사상의 물꼬를 튼 인물이다.

근현대

오세훈

제33·34·38·39·40대 서울특별시장을 지낸 5선 정치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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