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오씨
寶城 吳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7.1만
2015 인구
121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오현필吳賢弼
고려 고종 때의 무장으로, 1216년(고종 3) 침입한 거란군을 격퇴한 공을 세워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졌다. 이를 계기로 후손들이 보성을 관향으로 삼았다. 묘소는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취리산에 있다.
시조 오현필(吳賢弼)이 1216년 거란군을 물리친 공으로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보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 보성은 전라남도 보성군이다. 오현필의 셋째 아들 오원은 화순 오씨로, 넷째 아들 오광휘는 함양 오씨로 각각 분관하였고, 뒤에 흥양 오씨와 장흥 오씨도 이 계통에서 갈라져 나왔다. 후손은 28개 주요 분파로 나뉘어 세계를 이어 왔다. 문중의 계보에서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나라 태백의 후예를 원류로 삼고, 500년 무렵 신라에 들어온 오첨(吳瞻)의 24세손이 오현필이라고 전한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 조선 초의 오몽을(吳蒙乙)은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고 대장군을 지냈다. 오자경(吳子慶, 1414~1478)은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 3등에 책록되어 보산군(寶山君)에 봉해졌다. 조선 후기의 오저(吳著, 1714~1794)는 1756년 문과에 급제해 병조정랑을 거쳐 한성부좌윤에 이르렀다. 근현대에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 충청도 의원으로 활동한 오익표가 이 가문에서 나왔다. 집성촌은 충청북도 청주시 화산리·달계리 일원과 충청남도 보령·공주·천안, 세종특별자치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일대에 두루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71,162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오몽을
조선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고 대장군을 지낸 무장으로 1398년에 세상을 떠났다.
오자경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 3등에 책록되고 보산군(寶山君)에 봉해진 무신이다.
오저
1756년 문과에 급제해 병조정랑을 거쳐 한성부좌윤에 오른 문신이다.
오익표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 충청도 의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관료다.
참고 자료
같은 오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