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오씨
軍威 吳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7만
2015 인구
219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오숙귀吳淑貴
오첨(吳瞻)의 24세손인 오현좌(吳賢佐)의 둘째 아들로 고려 때 비안군(比安君)에 봉해졌다. 오첨은 초나라 재상 오기(吳起)의 45세손으로 500년 지증왕 1년 중국에서 신라에 들어왔다가 521년 다시 돌아갔는데, 그의 둘째 아들 오응(吳膺)이 나이가 어려 돌아가지 못하고 신라에 남아 함양에서 살게 되었다고 전한다.
시조 오숙귀는 오첨의 24세손 오현좌의 둘째 아들로 고려 때 비안군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이 군위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오첨은 500년 지증왕 1년 중국에서 신라로 들어와 왕명으로 김종지의 딸을 아내로 맞아 함양에서 22년을 살다가 521년 중국으로 돌아갔고, 그의 둘째 아들 오응이 신라에 남아 함양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본관 군위는 경상북도 중앙부에 있던 지명으로 본래 신라의 노동멱현이었는데 757년 경덕왕 16년 적라현으로 고쳐 효령현·부림현과 함께 숭선군의 관할이 되었다. 1018년 현종 9년 군위현이 상주목에 속하였고 1143년 인종 21년 일선군 소속으로 개편되었으며, 1896년 군위군으로 개편되고 1914년 의흥군과 의성군 일부가 병합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경상도 상주목 군위현의 토성으로 박·나·방·오·서 5성이 기록되어 있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로는 오섬(吳暹), 오정빈(吳廷賓), 오승현(吳承鉉)이 있다. 오섬은 161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4년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척후장으로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전공을 세우고 선산부사와 장흥부사, 강원도감사를 역임하였다. 오정빈은 1707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에 오르고 예조좌랑과 춘추관기사관을 겸임하였으며, 그의 묘역은 오정빈묘역으로 지정되어 전한다. 집성촌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형성되어 있으며, 2015년 인구는 26,949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오섬
1585년에 태어나 1615년 광해군 7년 식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4년 인조 2년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척후장으로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전공을 세웠고 선산부사와 장흥부사, 춘추관수찬관, 상의원정, 강원도감사를 역임하였다.
오정빈
1663년에 태어나 1687년 숙종 13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707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과 승의랑에 오르고 예조좌랑과 춘추관기사관을 겸임하였다.
오승현
1807년에 태어나 1854년 철종 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장령과 헌납, 사간원정언, 병조좌랑을 지냈으며 1864년 춘추관기사관으로 재직 중 별세하였다.
오영훈
1969년에 태어나 제20대와 제2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오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