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오씨
咸陽 吳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6만
2015 인구
184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오광휘吳光輝
고려에서 좌복야를 지낸 인물이다. 흥위위상장군으로서 거란군을 물리친 공으로 추충정란광국일등공신 금자광록대부에 올랐고 함양부원군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그 봉군지를 따라 함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오광휘가 거란과의 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함양부원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함양을 관향으로 삼았다. 오씨의 도시조는 500년(지증왕 1)에 중국에서 신라로 들어왔다가 다시 돌아간 오첨(吳瞻)이라 전한다. 본관 함양은 경상남도 함양군 일대로, 신라 때 속함군 또는 함성이라 불리다가 757년 천령군으로 고쳐졌다. 고려 초에 허주로 개칭되었고 1010년에 함양군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함양 오씨는 이 함양을 본관으로 하는 여러 오씨 계통 가운데 하나로 이어져 왔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2명과 무과 급제자 8명을 배출하였다. 오응은 1457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좌정언과 함길도관찰사를 지냈고, 오건은 155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해 호조·예조·병조·공조의 좌랑을 두루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오비가 진주성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였고, 진사 오익창은 정유재란 때 통제사 이순신을 도왔다. 집성촌은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상미리와 거창군 가조면 사병리 당동,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대천리, 황해도 송화군 운유면 다천리 등에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35,846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오기열吳基烈 | 1888–1950 | 전라북도 진안 | 3.1운동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오치행
음사로 장수현감과 이조정랑을 지냈으며 단종이 왕위를 물려준 뒤 화장산에 은거한 문신이다.
오응
1422년에 태어나 1470년에 죽었다. 1457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좌정언과 함길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오건
1521년에 태어나 1574년에 죽었다. 1558년 식년 문과 병과로 급제해 호조·예조·병조·공조의 좌랑을 두루 지낸 문신이다.
오비
1547년에 태어나 1593년에 죽었다. 159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중 진주성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장
1616년에 죽었다. 161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정언과 경성판관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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