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고씨
長興 高氏
9명
확인 독립유공자
2명
수록 친일 기록
11.4만
2015 인구
8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고중연高仲莚
일명 복림(福林)이라고도 하며 제주 고씨 중시조 고말로의 10세손으로 전한다. 고려 말 홍건적의 제2차 침입 때 공민왕을 경상도로 호종한 공으로 호종공신에 책봉되고 장흥백(長興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검교군기감을 지냈으며 아들 고합은 지영주사를 역임했다.
시조 고중연이 장흥백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전라남도 장흥을 관향으로 삼았다. 탐라 개국신화의 고을나에서 비롯된 제주 고씨에서 갈라져 나온 분관으로, 시조는 제주 고씨 중시조 고말로의 10세손으로 전한다. 장흥의 다른 이름을 따라 장택 고씨(長澤高氏)라고도 부르며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두 이름이 따로 집계된다. 임진왜란 때 고경명과 둘째 아들 고인후가 순국한 뒤 자손들이 고경명의 부인 울산 김씨에게 의지하다가 고인후의 처가가 있던 담양군 창평면으로 옮겨 살면서, 학봉파 후손을 따로 창평 고씨라 부르기도 한다.
가문의 역사
고운·고맹영·고경명 3대가 잇달아 문과에 올라 호남의 명문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1558년 식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고경명이 임진왜란 때 담양에서 의병 6천여 명을 일으켜 아들 고인후와 함께 금산에서 순국하고, 이듬해 맏아들 고종후가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하면서 삼부자 순국의 가문으로 이름이 높아졌다. 광주에 세워진 사당은 1603년(선조 36) 포충(褒忠)이라 사액되었으며, 고경명은 충렬, 고종후는 효열, 고인후는 의열의 시호를 받았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8명을 배출했으며, 예로부터 광주 지역에서는 행주 기씨·충주 박씨·광산 이씨·연일 정씨와 더불어 '기고박이정(奇高朴李鄭)'의 하나로 꼽혔다. 2015년 인구는 장흥 고씨 75,517명과 장택 고씨 38,539명을 합해 114,056명이다.
독립유공자 9명 확인
고광순高光洵
건국훈장 독립장호는 녹천(鹿川)으로 고인후의 사손(祀孫)이며 전라남도 담양 출신이다. 1895년 을미사변 뒤 기우만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좌도의병대장에 추대되었고, 1907년 다시 봉기해 남원·능주·동복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그해 9월 구례 연곡사에서 일본군의 야습을 받아 부장 고제량을 비롯한 장졸들과 함께 전사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고석진高石鎭
건국훈장 애국장전라북도 고창 출신으로 을사조약 이후 8도 사민에게 보내는 창의 포고문을 지어 문하의 고예진·고제만에게 배포하게 했고, 스스로 의병 30명을 이끌고 순창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체포되어 2년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임병찬이 조직한 대한독립의군부의 참모장을 맡았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9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고광순高光洵 | 1848–1907 | 전라남도 담양 | 의병 | 건국훈장 독립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고제량高濟亮 | 1849–1907 | 전라남도 담양 | 의병 | 건국훈장 독립장(1963)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고용진高龍鎭 | 1850–1922 | 전라북도 고창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고석진高石鎭 | 1856–1924 | 전라북도 고창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고광훈高光薰 | 1862–1930 | 전라남도 담양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고예진高禮鎭 | 1875–1952 | 전라북도 고창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고광채高光彩 | 1876–1974 | 전라남도 담양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고제남高濟南 | 1887–1909 | 전라북도 고창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고순진高舜鎭 | 1863–1938 | 전라북도 고창 | 3.1운동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2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고재필高在珌
관료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민족문제연구소) 해외 부문 등재
전라남도 담양 출신으로 고경명의 후손이다. 일본 주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37년 만주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뒤 대동학원을 거쳐 만주국 단둥 행정과 사무관으로 근무했다. 광복 후 귀국해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고 제7·8·9·10대 국회의원과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으며,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수록을 위해 정리한 명단의 해외 부문에 선정되었다.
출처 확인 ↗고재호高在鎬
사법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민족문제연구소) 사법 부문 등재
전라남도 담양 출신으로 1937년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39년 조선변호사시험과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해 1941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는 등 일제강점기에 판사로 재직했다. 광복 후에는 대구고등법원장과 대법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내며 사법권 독립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사법 부문에 포함되었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고경명
1558년 식년 문과에 장원급제해 동래부사 등을 지낸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담양에서 의병 6천여 명을 일으켜 금산 전투에서 아들 고인후와 함께 순국했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고종후
고경명의 맏아들로 아버지와 동생이 전사한 뒤 스스로 복수의병장이라 칭하며 의병을 모았고,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천일·최경회와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 시호는 효열(孝烈)이다.
고인후
고경명의 둘째 아들로 1589년 증광 문과에 급제했고, 임진왜란 때 권율 휘하에 들어갔다가 금산 전투에서 아버지와 함께 전사했다. 시호는 의열(毅烈)이다.
고부천
고인후의 아들로 1615년 알성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정주
호는 춘강(春崗)으로 규장각 직각을 지낸 뒤 낙향해 담양 창평에 창흥의숙을 세웠고, 사위인 김성수를 비롯한 근대 인재들을 길러냈다.
고중석
전라남도 담양의 장흥 고씨 집안에서 태어나 광주고등법원장을 거쳐 1994년부터 2000년까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법조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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