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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711.8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개성 고씨

開城 高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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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8만

2015 인구

271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고령신高令臣

1045년에 태어나 1116년에 세상을 떠난 고려의 문신이다. 어려서 고아로 자랐으나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해 이부낭중과 추밀원우승선을 거쳤고, 1101년 어사중승으로 동북면병마사가 되었으며 1109년 이부상서 지추밀원사에 올랐다. 1113년 검교사공 참지정사가 되어 벼슬에서 물러났으며, 청렴하고 검소하여 죽었을 때 집에 남은 재물이 없었다고 한다. 시호는 양경(良敬)이다.

개성 고씨는 고려의 도읍이었던 개성을 본관으로 하며 개주 고씨(開州高氏)라고도 불렸다. 시조 고령신은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해 예종 대에 참지정사에 이른 문신으로, 1106년 경상도에 홍수가 나자 안무사로 파견되어 공전세를 감면해 백성을 구제하기도 하였다. 이 가문은 제주 고씨 양경공파(良敬公派)라고도 불리는데, 『개성고씨양경공파보』는 제주 고씨 중시조 고말로의 손자 계열에서 고령신이 나왔다고 적고 있다. 다만 『고려사』의 기록과 대조하면 고말로에서 고령신에 이르는 세대의 연대가 맞지 않고, 고령신이 어려서 고아가 되었다는 열전 기록과도 어긋나므로, 후대에 족보를 합본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계보로 보고 고령신을 실질적인 시조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견해가 있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2명과 무과 급제자 12명을 배출하였고, 역과와 의과 합격자도 여럿 나와 기술직 관료 가문의 성격도 아울러 지녔다. 9세손 고사경은 고려 우왕 때 지인상서를 지내고 조선 개국 후 보문각직학사를 역임하면서 김지 등과 함께 이두로 풀어쓴 『대명률직해』를 편술하였다. 고약해는 세종 대에 대사헌과 형조참판, 한성부윤을 지냈고 개성부유수로 나갔다가 임지에서 죽었으며 시호는 정혜다. 임진왜란 때는 고상안이 향리인 상주 함창에서 의병 대장으로 추대되었고, 숙종 대의 역관 고시언은 서민의 시를 모아 『소대풍요』를 편찬해 위항문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집성촌은 경상북도 문경과 상주, 예천 일대에 형성되어 있으며 문경 개성고씨 양경공파 문중 전적 및 고문서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18,247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고사경

고려 우왕 때 지인상서를 지내고 조선 개국 후 보문각직학사를 역임한 문신이다. 김지 등과 함께 명나라 법전을 이두로 풀어쓴 『대명률직해』를 편술하였고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조선

고약해

1377년에 태어나 1443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으로, 효행으로 천거되어 관직에 나아갔다. 예조참의와 이조참의, 충청도관찰사, 한성부윤, 형조참판, 대사헌을 지냈고 개성부유수로 나갔다가 임지에서 죽었으며 시호는 정혜다.

조선

고상안

1576년 문과에 급제해 함창현감과 풍기군수를 지낸 문신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인 상주 함창에서 의병 대장으로 추대되어 공을 세웠고, 뒤에 지례현감과 함양군수를 거쳐 울산판관을 지냈다.

조선

고시언

1687년 역과에 급제해 역관으로 2품에 오른 인물이다. 한시에 뛰어나 당풍을 본받은 시인으로 꼽혔으며, 세조 때부터 영조 때까지의 서민시를 모아 『소대풍요』를 편찬하였다.

근현대

고병익

1924년에 태어나 2004년에 세상을 떠난 동양사학자로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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