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서씨
扶餘 徐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7만
2015 인구
27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부여융扶餘隆
백제 의자왕의 아들이자 태자이다.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패해 멸망하자 당나라로 호송되었다. 당 고종이 그의 성을 부여(扶餘)에서 서(徐)로 고쳐주었다고 전하는데, 다만 부여융의 묘지석과 그 손녀의 기록에는 부여라는 성이 그대로 쓰여 있어 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견해가 갈린다.
시조는 백제 의자왕의 태자 부여융으로, 백제 멸망 후 당나라로 옮겨진 뒤 성을 서씨로 고쳐 받았다는 전승에서 가문이 비롯되었다. 본관 부여(扶餘)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성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에 해당한다. 다만 부여융 본인의 묘지석에는 여전히 부여 성이 쓰여 있어 개성(改姓) 시점을 두고 논란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부여 서씨는 백제 왕성의 후예를 표방하는 드문 사례로 꼽힌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로 서도유·서익·서정훈·서필원 등이 배출되었다. 서익(1542~1587)은 예조와 병조 등을 거친 문신이며, 서필원(1614~1671)은 형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지냈다. 집성촌은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의 삼전리·강청리·두월리 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근현대에도 법조계와 관계에서 인물이 나왔다. 2015년 인구는 17,145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서익
1542년에 태어나 1587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으로 예조와 병조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서필원
1614년에 태어나 1671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으로 형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지냈다.
서성
제1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대법원 대법관을 지낸 법조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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