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서씨
達城 徐氏
8명
확인 독립유공자
3명
수록 친일 기록
40.7만
2015 인구
22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서진徐晉
고려 때 봉익대부 판도판서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진 인물로, 13세기 후반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달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서진이 고려 후기에 봉익대부 판도판서를 역임하고 달성군에 봉해진 데서 비롯된 가문이다. 본관인 달성(達城)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일대의 옛 지명으로, 달구벌 토성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같은 서씨인 대구 서씨(소윤공파·경파)와는 계통을 달리하는 판도공파(향파)로 구분되며, 두 가문의 동원(同源) 여부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가문의 역사
4세 서균형(1340~1391)은 문과에 급제해 정당문학에 올랐고, 5세 서침은 세종 때 달성의 세거지를 국가에 헌납하면서 그 대가로 대구부민의 환곡 이자 경감을 청원해 '박시제중(博施濟衆)'의 표상이 되었다. 대구 사림은 1665년 구암서원을 세워 서침을 제향했고, 그가 심었다는 회화나무는 지금도 달성공원에 남아 있다. 조선시대를 통해 대구·경북 지역의 대표적 재지사족으로 자리 잡았으며, 2015년 인구는 407,431명이다.
독립유공자 8명 확인
서상한徐相漢
건국훈장 독립장1920년 영친왕과 일본 황족 이방자의 정략결혼을 저지하기 위해 폭탄을 제조해 투탄할 계획을 세웠다가 밀고로 체포되었다. 출옥 후에도 재일 조선인 노동운동과 항일 민족운동을 이어갔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출처 확인 ↗서병희徐炳熙
건국훈장 독립장1907년 군대해산 후 의병장 허위 휘하에 들어갔다가 영남으로 내려와 울산·경주의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했고, 1909년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조직해 경상남도 전역에서 항전하다 밀고로 체포되어 순국했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상교徐尙敎
건국훈장 독립장1942년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 학생결사 태극단을 조직하고 체육국장을 맡아 일본군 입대 반대 유인물을 배포하며 독립정신을 고취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출처 확인 ↗서상락徐相洛
건국훈장 애국장신흥무관학교를 수료한 뒤 교관으로 독립군을 양성했고, 1919년 11월 김원봉 등과 함께 의열단 창단에 참여했다. 1920년 밀양경찰서 폭파 계획에 관여하고 군자금을 전달했으며, 1922년 의열단 상하이 본부의 재호단장을 맡아 활동하다 1923년 사망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상일徐相日
건국훈장 애족장1909년 안희제·김동삼 등과 비밀결사 대동청년당을 조직했고, 3·1운동 직후에는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파리강화회의 독립청원서 전달에 관여했다. 광복 후 제헌국회 의원과 혁신정당 활동을 했으며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4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3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서병주徐炳柱
중추원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대구부협의원과 수리조합장을 거쳐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중추원 부문에 모두 포함되었다.
출처 확인 ↗서정주徐廷柱
문화·언론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이지만, 일제 말기 '다쓰시로 시즈오'로 창씨개명하고 태평양전쟁과 가미카제를 찬양하며 조선인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시와 산문 11편을 발표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 문학 부문에 등재되었다.
출처 확인 ↗서광제徐光霽
문화·언론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영화감독·평론가로 1938년 내선일체를 선전하는 《군용열차》를 연출했고 조선영화인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조선영화령을 옹호하는 글을 발표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 연극/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서균형
1360년 문과에 급제해 정당문학에 오른 고려 말 문신으로, 달성 서씨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서침
세종 때 달성의 세거지를 국가에 헌납하고 그 대가로 대구부민의 환곡 이자를 낮춰 달라 청원한 인물로, 구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서병수
부산광역시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서영교
서울 중랑구에서 당선된 4선 국회의원으로,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서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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