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손씨
密陽 孫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2명
수록 친일 기록
31.5만
2015 인구
30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손순孫順
신라 흥덕왕 때 사람으로,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아이를 묻으려다 석종(石鐘)을 얻었다는 『삼국유사』의 효행 설화로 유명하다. 835년 나라의 효자로 일컬어져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시조 손순은 신라 6부 촌장 가운데 무산 대수촌장 구례마(俱禮馬)의 후손으로, 효행으로 이름을 얻어 월성군에 봉해졌다. 손순의 장손자 손익감이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응천, 곧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밀양은 손씨의 가장 큰 본관으로 손씨 인구의 다수를 차지한다.
가문의 역사
고려 초 중흥조 손긍훈은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보국숭록대부에 오르고 광리군에 봉해졌으며 밀양의 성황신으로 모셔졌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38명, 무과 급제자 125명을 배출했다. 좌사간공파·전농시사공파·돈암공파 등 21개 분파가 있으며, 밀양 오연정과 예림서원 등 유적이 남아 있다. 2015년 인구는 314,890명이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손병희孫秉熙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천도교 제3대 교주로 민족대표 33인의 대표가 되어 3·1 독립선언을 주도했고, 천도교의 자금과 보성사 인쇄망을 동원해 독립선언서를 전국에 배포했다. 태화관 선언식 후 체포되어 옥고 끝에 병보석으로 나왔다가 1922년 별세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손정도孫貞道
건국훈장 독립장감리교 목사로 신한청년당에 입당해 파리강화회의 참여를 도왔고, 1919년부터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제2대 의장을 지냈으며 임시정부 교통총장과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맡았다. 만주에서 선교와 독립운동을 병행하다 1931년 별세했고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당시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손용우
건국훈장 애족장1940년 서울에서 일본의 패전을 선전하고 동아일보·조선일보 폐간의 부당성을 성토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체포되어 2년 3개월을 복역했다.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2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가문의 주요 인물
손순
『삼국유사』 효선편에 실린 '손순매아(孫順埋兒)' 설화의 주인공으로, 신라의 대표적 효자다.
손긍훈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 밀양의 성황신으로 모셔졌다.
손화중
동학 대접주로 전봉준·김개남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3대 지도자의 한 사람이다.
손기정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해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육상 선수다.
손진태
조선민속학회를 창설하고 신민족주의 사관을 제창한 민속학자이자 역사학자다.
손석희
MBC 앵커를 거쳐 JTBC 보도부문 사장을 지낸 언론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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