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직 손씨
一直 孫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7만
2015 인구
21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손응孫凝
본래 성이 순(荀)씨였는데 고려 현종의 이름과 음이 같다 하여 이를 피해 손(孫)씨를 사성받았다고 전하는 인물이다. 후손인 손홍량의 기록에도 5대조 손응 때 성을 손씨로 고쳤다는 내용이 전한다. 후대에는 상의직장동정을 지낸 손세향(孫世鄕)을 1세조로 삼아 계대를 이어 오고 있다.
일직 손씨는 순씨에서 손씨로 성을 고쳤다고 전하는 손응을 시조로 하고, 상의직장동정을 지낸 손세향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온 가문이다. 사성의 유래는 고려 현종의 이름과 음이 같은 것을 피하려 한 데 있다고 전한다. 본관 일직은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일대이다. 일직현은 757년 신라 경덕왕 때 직녕현(直寧縣)으로 고쳐져 고창군의 영현이 되었다가, 고려에 들어와 다시 일직현으로 환원되었다.
가문의 역사
가문은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6명을 배출하였고 그 밖에 무과·생원시·진사시·음관·의과 등으로도 여러 인물을 냈다. 고려 말의 손홍량은 충선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충숙왕·충혜왕 두 조정에서 벼슬하였고, 도첨의찬성사를 거쳐 판삼사사에 올랐으며 1350년 복천부원군에 봉해졌다. 1362년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이 남쪽으로 피난할 때 평복 차림으로 왕을 맞아 치하를 받았고, 1364년에는 난이 평정된 것을 하례하러 개경에 올라가 궤장과 초상화를 하사받았으며 시호는 정평(靖平)이다. 조선시대에는 손조서가 1435년 문과에 급제하여 봉산군수를 지내고 도학으로 김종직 등과 교유하였고, 손처눌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성리학자이며, 손명대는 1697년 무과에 급제하여 1728년 이인좌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수군절도사에 올랐다. 집성촌은 밀양시 산외면·산내면, 의성군 춘산면, 청도군, 대구광역시 동구, 경주시 강동면 등에 형성되어 있다. 인구는 1985년 5,289가구 22,215명, 2000년 7,714가구 24,187명이었으며 2015년 인구는 27,13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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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손홍량
1287년에 태어나 1379년에 죽은 문신으로, 판삼사사에 오르고 복천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공민왕에게서 궤장과 초상화를 하사받았다. 시호는 정평이다.
손조서
1412년에 태어나 1473년에 죽은 문신으로, 1435년 문과에 급제하여 봉산군수를 지냈고 도학에 정통하여 김종직 등과 교유하였다.
손처눌
1553년에 태어나 1634년에 죽은 성리학자로,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에 나섰다.
손명대
1675년에 태어나 1733년에 죽은 무신으로, 1697년 무과에 급제하고 1728년 이인좌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수군절도사에 올랐다.
손정의
1957년에 태어난 재일 한국인 기업인으로, 소프트뱅크를 창업하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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