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해 손씨
平海 孫氏
4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5만
2015 인구
29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손익담孫翼淡
신라의 이름난 효자 손순(孫順)의 손자로 전하는 인물이다. 895년(진성여왕 9) 평해군(平海君)에 봉해졌다고 하며,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삼아 본관을 평해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형 손익감은 밀양 손씨, 아우 손익원은 청주 손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전한다.
평해 손씨는 신라의 효자 손순을 대종의 시조로 받들고, 그의 손자 삼형제 가운데 둘째인 손익담을 1세조로 하여 계보를 이어 온 가문이다. 손익담이 평해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평해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하며, 그런 까닭에 밀양 손씨·경주 손씨와 같은 뿌리로 여겨진다. 고려 원종 때 손인량이 평장사로서 임연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기성후(箕城侯)에 봉해졌는데, 기성은 평해의 옛 이름이어서 본관이 더욱 굳어졌다고 한다. 본관 평해는 본래 근을어(斤乙於)였다가 757년(경덕왕 16) 평해로 고쳐져 유린군의 영현이 되었고, 고려 현종 때 예주의 영현으로 옮겨졌다가 충렬왕 때 지군사로 승격되었으며 1466년(세조 12) 군이 되었다. 1914년 울진군 평해면으로 개편되었고 1963년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이관되었으며 1980년 읍으로 승격되어 오늘날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이다.
가문의 역사
가문은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8명을 배출하였다. 조선 전기의 손순효는 대사헌을 지낸 문신으로 보문각대제학을 역임하고 성리학에 통달하였다고 전한다. 그의 아들 손주는 1486년 생원시를 거쳐 1492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508년 형조참판이 된 뒤 대사헌·한성부좌윤·병조참판을 지냈으며 만년에 우참찬과 좌참찬에 올라 학교 교육의 강화를 주장하였다. 조선 중기의 손식은 전라도관찰사와 호조참판을 지냈다. 가문은 정충공파·목이공파·동정공파 등의 지파로 나뉘어 울진 일대에 세거해 왔고, 집성촌은 경상북도 울진군과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신니면, 황해도 금천군 웅덕면 고능리 등에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15,488명이다.
독립유공자 4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3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손순효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대사헌을 지냈다. 보문각대제학을 역임하고 성리학에 통달하였다고 전한다.
손주
손순효의 아들로 1539년에 죽었으며 자는 여림(汝霖), 시호는 희질(禧質)이다. 1486년 생원시, 1492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508년 형조참판이 된 뒤 대사헌·한성부좌윤·병조참판을 지냈다. 1521년 명나라에 사절로 다녀왔으며 만년에는 우참찬과 좌참찬을 역임하고 학교 교육의 강화를 주장하였다.
손식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전라도관찰사와 호조참판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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