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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671.9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밀양 변씨

密陽 卞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9만

2015 인구

267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변고적卞高迪

고려 때 국자진사(國子進士)를 지내고 밀양에 대대로 살면서 초계 변씨에서 갈라져 나온 인물이다. 초계 변씨 시조 변정실의 둘째 아들 변요(卞耀)의 손자로 전한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밀양을 관향으로 하였다.

변씨는 당나라 예부상서를 지낸 변원(卞源)이 신라에 정착한 데서 비롯했다고 전하나 이후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문하시중으로 팔계군(八溪君)에 봉해진 변정실(卞庭實)을 초계 변씨의 시조로 받든다. 변정실의 아들 대에 변광의 장파, 변요의 중파, 변휘의 계파로 갈라졌고, 변요의 손자인 국자진사 변고적이 밀양에 세거하면서 밀양 변씨로 분관하였다. 밀양은 경상남도 밀양시이고 팔계는 초계의 옛 지명이다. 후대로 내려오며 초계와 밀양 외에 원주·팔계·진주·청주·경주·장성·남원 등 44개 본관으로 나뉘었으나 지금은 합보(合譜)하였으며, 밀양 변씨는 분관한 뒤에도 초계 변씨와 대종회를 함께한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 조선 초에는 변옥란의 아들 형제인 변중량과 변계량이 나와 가문의 이름을 높였다. 특히 춘정 변계량은 예조판서를 지내고 20년 가까이 집현전 대제학을 맡아 나라의 외교 문서를 지었으며 시호는 문숙이다. 춘당 변중량의 5세손인 구산 변벽(卞璧)은 1483년 합천 야로에서 태어나 1507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외가가 있는 거창에 자리를 잡아 그 후손이 번성하였으며, 증손 변청과 변혼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집성촌은 거창군 가조면 병산리를 비롯해 거창읍 가지리와 고제면 용강 등지에 있었고 청도군에도 세거지가 형성되었다. 거창 문중에서는 유림 대표로 파리장서에 서명한 독립유공자 변양석이 나왔고, 근현대에는 변영만·변영태·변영로 삼형제가 이 가문 사람이다. 2015년 인구는 18,750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변계량

이색과 정몽주에게 배우고 1385년 문과에 급제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예조판서와 의정부참찬 등을 거쳐 20년 가까이 집현전 대제학을 맡아 외교 문서를 지었고, 과거 시관으로 공정을 기해 고려 말의 폐단을 고쳤다. 호는 춘정이며 『춘정집』을 남겼고 시호는 문숙이다.

조선

변중량

변계량의 형으로 우부승지를 지낸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아버지 변옥란과 함께 조선 개국 원종공신이 되었으나 무인정사 때 정도전 일파로 몰려 화를 입었다. 호는 춘당이다.

조선

변벽

1483년 합천 야로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가 있는 거창에서 자란 유학자로, 학문과 덕행이 높아 기묘명현에 들었다고 전한다. 거창 밀양 변씨의 입향조이며 문집 『구산집』이 전한다.

근현대

변영태

외무부 장관을 거쳐 제5대 국무총리를 지낸 정치인이다. 법조인이자 한학자였던 변영만, 시인 변영로와 형제간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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