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1524.8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원주 변씨

原州 邊氏

1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4.8만

2015 인구

152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변안열邊安烈

1334년 원나라 심양에서 태어나 공민왕을 따라 고려로 들어온 무장이다. 1361년 홍건적을 격퇴해 2등공신 판소부감사가 되었고 이듬해 개성을 수복해 경성수복 1등공신에 올랐으며, 왜구를 물리친 공으로 원천부원군에 봉해지고 판삼사사와 영삼사사에 이르렀다. 1380년에는 이성계 등과 함께 운봉과 황산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으나, 우왕 복위 모의에 연루되어 1390년 처형되었다. 조선 개국 뒤 개국 이등공신에 추증되었다.

시조 변안열의 후손들이 강원특별자치도 원주를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시조가 원나라 심양 출신으로 공민왕을 따라 고려에 들어온 귀화 계통이라는 점이 이 가문의 두드러진 내력이다. 후손은 전서공파(변숙), 첨지공파(변량보), 별좌공파(변극충), 참의공파(변극민), 첨추공파(변차희), 호군공파(변상근), 훈련공파(변예), 중랑장공파(변세청) 등 여러 파로 나뉘어 계세하였다. 한자 표기는 邊과 邉을 함께 쓴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32명을 배출하였다. 시조 변안열이 무장으로 이름을 떨친 내력을 이어 무반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많다. 변협(1528~1590)은 을묘왜변 때 전라도 해남에 침입한 왜선 600여 척을 격퇴했고 제주목사와 전라우방어사를 거쳐 공조판서 겸 도총관과 포도대장을 지냈으며, 1796년 양정(襄靖) 시호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는 해남현감 변응정(1557~1592)이 웅치 전투에서 전과를 올려 수군절도사가 되었고 제2차 금산 전투에서 금산성을 기습해 싸우다 전사했으며, 뒤에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장(忠壯) 시호를 받았다. 집성촌은 경기도 양주와 인천, 강원도 홍천군, 경상북도 봉화군·안동시, 전라북도 전주시, 황해도 연백군·개풍군, 평안도 태천, 제주특별자치도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47,804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변태우邊太祐1899–1965제주도 제주국내항일건국포장(1993)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변협

을묘왜변 때 전라도 해남에 침입한 왜선 600여 척을 격퇴한 무장으로 제주목사와 전라우방어사를 거쳐 공조판서 겸 도총관과 포도대장을 지냈고, 1796년 양정 시호를 받았다.

조선

변응정

임진왜란 때 해남현감으로 웅치 전투에서 전과를 올려 수군절도사가 되었고 제2차 금산 전투에서 금산성을 기습해 싸우다 전사했으며,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장(忠壯) 시호를 받아 금산의 종용사에 배향되었다.

근현대

변웅전

1963년 KBS 아나운서로 출발해 MBC에서 가족오락회와 명랑운동회 등을 진행한 방송인으로, 뒤에 제15·16·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