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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1395.7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표기 변형 합산

초계 변씨

草溪 卞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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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5.7만

2015 인구

139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변정실卞庭實

고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해 문하시중을 지내고 팔계군(八溪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팔계는 초계의 옛 이름으로, 후손들이 이를 따라 초계를 관향으로 삼았다. 변씨의 도시조로는 당나라 천보 연간에 예부상서를 지내다 743년 신라에 왔다고 전하는 변원(卞源)을 든다.

초계(草溪)는 신라 때 초팔혜현이었다가 경덕왕 때 팔계(八溪)로 고쳐졌고 940년 초계로 개칭되었으며,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이다. 시조 변정실이 팔계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초계를 본관으로 삼았다. 후손은 변정실의 세 아들을 파조로 하는 장파(변광)·중파(변요)·계파(변휘)로 크게 갈라졌고, 중파에서는 변요의 손자 변고적이 밀양으로 분적해 밀양 변씨를 이루었다. 또 고려 공민왕 때 급제해 문하시랑을 지낸 뒤 직산에 은거한 변남룡의 여섯 아들이 모두 문과에 올라 연안공파(변순)·장흥공파(변타)·참판공파(변굉)·제학공파(변효문)·이조참판공파(변효경)·우윤공파(변효량)의 파조가 되었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6명을 배출하였다. 변효문(1396~1461)은 1414년 알성문과에 급제해 직제학과 종부시 소윤·사재감정을 거쳐 중추원부사에 올랐고 경주부윤과 전주부윤을 지냈으며, 1443년에는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고 《농사직설》과 《신주무원록》 편찬에 참여했다. 그의 아우 변효경(?~1456)은 1419년 문과에 급제해 좌익원종공신에 책록되었고, 변시익(1598년생)은 1628년 문과에 급제해 승지를 지냈다. 청주 지역에는 조선 중종 무렵 13세손 변충남이 처가인 파평 윤씨를 따라 내수읍 비홍리에 들어와 비상리·초정리·우산리에 동족마을을 이루었다. 그 밖의 집성촌은 거창군 가조면, 합천군 청덕면, 청도군, 문경, 부천시, 창원시 등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57,295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변남룡

공민왕 때 급제해 문하시랑을 지낸 뒤 직산에 은거한 문신으로, 여섯 아들이 모두 문과에 올라 각각 파조가 되었다.

조선

변효문

1414년 알성문과에 급제해 중추원부사와 경주·전주부윤을 지낸 문신이다. 1443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고 《농사직설》과 《신주무원록》 편찬에 참여했다.

조선

변효경

1419년 문과에 급제해 좌익원종공신에 책록된 문신으로, 이조참판공파의 파조다.

조선

변시익

1628년 문과에 급제해 승지를 지낸 문신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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