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복 오씨
同福 吳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7.2만
2015 인구
120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오녕吳寧
고려 때 인물로 동복 오씨의 시조다. 아버지 오현좌(吳賢佐)가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공을 인정받아 동복군(同福君)에 봉해졌고, 후손들은 그 아들인 오녕을 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동복 오씨는 오현좌(吳賢佐)가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공으로 동복군(同福君)에 봉해진 데서 비롯되었다. 후손들은 오현좌의 아들 오녕(吳寧)을 시조로 삼고 동복(同福)을 관향으로 하였다. 본관 동복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일대에 해당하는 옛 고을 이름이다. 고려 후기에 오잠(吳潛)이 1320년 첨의찬성사에 올라 구성군(龜城君)에 봉해지면서 가문이 중앙 정계에 자리를 잡았다. 조선에 들어서는 문과 급제자를 꾸준히 배출하며 사족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32명을 배출하였다. 세종 때 오승(吳陞)은 공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냈다. 선조·광해군 대의 오억령(吳億齡)은 우참찬에 오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오백령(吳百齡)은 복천군(福川君)에 봉해졌다. 조선 후기에는 오단(吳端)과 오정일(吳挺一) 등이 잇달아 현달하였고, 오시수(吳始壽)는 1679년 우의정에 올라 남인의 영수로 활동하였다. 2015년 인구는 72,394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오잠
1320년 첨의찬성사에 올라 구성군(龜城君)에 봉해진 문신이다.
오승
세종 때 공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문신이다.
오억령
우참찬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된 문신이다.
오시수
1679년 우의정에 오른 문신으로 남인의 영수로 활동하였다.
참고 자료
같은 오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