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 백씨
藍浦 白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1만
2015 인구
33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백중학白仲鶴
810년에 태어나 886년에 죽었다. 자는 운로(雲路)이며 신라 헌안왕 때 삼중대광 좌간의대부를 지냈다고 전한다. 860년 무렵 남포현에 자리를 잡으면서 후손들이 남포를 본관으로 삼았고, 시호는 익렬(翼烈)이다.
시조 백중학(白仲鶴, 810~886)은 자가 운로이며 신라 헌안왕 때 삼중대광 좌간의대부를 지냈다고 전한다. 860년 무렵 남포현에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서 후손들이 남포를 관향으로 삼았고, 시호는 익렬이다. 본관 남포(藍浦)는 삼한시대 마한의 만로국 땅으로 백제 때 사포현이었다가 757년 남포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1018년 가림군에 속하였다가 1466년 다시 남포현이 되었고, 1895년 남포군, 1913년 보령군 남포면을 거쳐 현재는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이다. 후대에 백이정의 아들 백세렴이 서천 백씨를 열었고, 8세손 백훈이 남해 백씨의 시조가 되어 분적하였다.
가문의 역사
고려시대에 남포 백씨는 문한 가문으로 이름이 높았다. 백광신(1135~1211)은 지정사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다. 백문절(1208~1282)은 국자좨주와 국학대사성을 지냈으며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사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일로 이름이 났다. 백이정(1247~1323)은 1298년 충선왕을 호종하여 원나라 연경에 가 십여 년을 머물며 정주의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1308년 정주의 저작과 주자의 『가례』를 가지고 돌아와 고려에서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정리한 인물로 평가된다. 과거 급제자는 고려시대 문과 5명, 조선시대 문과 4명에 무과와 진사시 입격자가 더해진다. 근현대에는 백은기가 서울시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를, 백낙호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을 지냈다. 2015년 인구는 10,907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백관형白觀亨 | 1861–1928 | 충청남도 보령 | 의병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백광신
1135년에 태어나 1211년에 죽었다. 지정사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에 오른 고려의 재상이다.
백문절
1208년에 태어나 1282년에 죽었다. 국자좨주와 국학대사성을 지냈으며,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의 임명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일로 이름이 났다.
백이정
1247년에 태어나 1323년에 죽었다. 호는 이재(彛齋)이고 시호는 문헌(文憲)이며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졌다. 1298년 충선왕을 호종하여 원나라 연경에 가 십여 년을 머물며 정주의 성리학을 연구하고 1308년 관련 저작과 주자의 『가례』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제현·박충좌·이곡·백문보 등이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백낙호
1929년에 태어나 2008년에 죽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을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백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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