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인구 566위2,120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부여 백씨
夫餘 白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120
2015 인구
56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백영신白英臣
고려 전기에 부여군을 지냈다고 전한다. 그 후손들이 부여를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백영신(白英臣)은 고려 전기에 부여군을 지냈다고 전하는 인물이다. 본관 부여는 충청남도 부여군으로, 538년부터 660년까지 백제의 수도가 있던 곳이다.
가문의 역사
조선의 백수회는 19세에 임진왜란을 만나 차라리 이씨의 귀신이 될지언정 개와 양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는 열 글자를 등에 써 붙이며 절개를 지켰고, 그 후손들이 양산에 세거하면서 양산 백씨로 분적하였다. 2015년 인구는 2,120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백수회
1574년에 태어나 임진왜란 때 절개를 지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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