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양씨(梁)
南原 梁氏
한글 표기가 같은 다른 가문이 있어요: 남원 양씨(楊)
9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0.8만
2015 인구
32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양우량梁友諒
신라 경덕왕 때 남원부백(南原府伯)에 봉해진 인물로, 탐라 개국신화의 삼신인 가운데 하나인 양을나(梁乙那)의 후손으로 전해진다. 후손들이 남원을 본관으로 삼았다.
제주 양씨에서 갈라져 나온 계통으로, 원시조는 탐라를 세운 삼신인 중 한 사람인 양을나이며 시조는 신라 경덕왕 때 남원부백에 봉해진 양우량이다. 본관 남원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로, 이 가문이 대대로 세거해 온 곳이다. 같은 이름의 '남원 양씨(楊氏)'는 고려 때 지영월군사를 지낸 양경문을 시조로 하는 전혀 다른 가문이다.
가문의 역사
중간 계보가 실전되어 고려 성종 때 태조 왕건의 증손녀와 혼인한 양능양의 병부공파, 원종 때 용성부원군에 책봉된 양주운의 용성군파, 충선왕 때 대방부원군에 봉해진 양수정의 대방군파 세 계통으로 나뉘어 세계를 잇는다. 조선시대에는 『동국여지승람』 편찬에 참여하고 공조판서를 지낸 양성지, 임진왜란 의병장 양대박,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한 양헌수 등이 나왔다. 2015년 인구는 307,724명으로 성씨 순위 22위다.
독립유공자 9명 확인
양기탁梁起鐸
건국훈장 대통령장1905년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신민회를 조직했으며, 국채보상운동을 이끌다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만주에서 의성단을 조직해 무장투쟁을 벌였고 1933~1935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출처 확인 ↗양전백梁甸伯
건국훈장 대통령장평북 선천의 목사로 이승훈과 함께 기독교계의 3·1운동 참여를 이끌었고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해 체포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양세봉梁世奉
건국훈장 독립장1930년대 초 만주에서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으로 중국 의용군과 연합해 영릉가·흥경성 전투 등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무장투쟁의 상징적 인물이다. 1934년 밀정의 유인으로 피살되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양근환梁槿煥
건국훈장 독립장1921년 도쿄에서 참정권 청원을 내세우며 자치운동을 벌이던 친일 인사 민원식을 처단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양문순
건국훈장 애족장1907년 양한규를 총대장으로 추대한 남원 의병에 참여해 남원읍 기습·점령 작전을 함께 수행하다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되었다.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8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양전백梁甸伯 | 1869–1933 | 평안북도 선천 | 3.1운동 |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양기탁梁起鐸 | 1871–1938 | 평안남도 강서 | 계몽운동 |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양한규梁漢奎 | 1844–1907 | 전라북도 남원 | 의병 | 건국훈장 독립장(1968)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양근환梁槿煥 | 1894–1950 | 황해도 연백 | 일본방면 | 건국훈장 독립장(1980)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양세봉梁世奉 | 1896–1934 | 평안북도 철산 | 만주방면 | 건국훈장 독립장(1962)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양제안梁濟安 | 1860–1929 | 경상북도 영일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양응인梁應仁 | 1863–1908 | 전라남도 구례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1)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양일동梁一東 | 1912–1980 | 전라북도 옥구 | 일본방면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양성지
세종~성종 대에 걸쳐 활동한 문신·학자로 지중추부사와 공조판서를 지내고 좌리공신에 책록되었으며, 『동국여지승람』 등 국가 편찬사업에 참여했다.
양대박
임진왜란 때 남원에서 의병을 일으켜 고경명 부대와 합류해 싸운 의병장이다.
양헌수
1866년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한 무장으로 뒤에 공조판서에 올랐다.
양승조
4선 국회의원을 거쳐 충청남도지사를 지낸 정치인이다.
양학선
2012년 런던 올림픽 기계체조 도마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딴 선수다.
참고 자료
같은 양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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